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3월 20일] <1649> 엉클 톰스 캐빈


'이렇게 자그마한 부인이 그토록 큰 전쟁을 일으킨 책을 쓰신 분이군요.'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 링컨 대통령이 스토 부인을 만난 자리에서 했다는 말이다. 학자들은 링컨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근거가 없음에도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스토 부인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s Cabin)'이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에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후손들이 책 판매를 늘리기 위해 지어냈다는 견해도 있다. 가정주부이던 스토 부인이 책을 쓴 이유도 돈에 있다. 가난한 목사의 딸로 태어나 남편도 작은 신학교 교수였던 스토 부인은 일곱 자녀 부양이 힘에 부치자 처녀시절 꿈꾸었던 소설을 지역 신문에 기고하며 생계를 보탰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톰 아저씨의 오두막'도 노예폐지를 주장하는 신문에 100달러 원고료에 3개월 연재조건으로 시작했다. 반응이 좋자 연재는 10개월분으로 늘어나고 부인은 200달러를 더 받았다. 연재소설을 모아 단행본으로 발간한 시기는 1852년 3월20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스토 부인이 일기에 '지역의 인쇄소와 제지공장이 쉴 새 없이 돌아간다'고 적었을 정도다. 발매 첫해에 미국에서만 27만부 이상 팔리고 세계 각국에서도 번역서가 쏟아져 나왔다. 스토 부인(당시 41세)은 얼마나 벌었을까. 확실치 않다. 최소 4만3,000여달러에서 수십만달러라는 추산만 있다. 최초 출판업자가 광고비 지출을 구실삼아 인세를 덜 지급한데다 책의 판형과 가격이 제 각각이어서 추정하기도 어렵다. 인세를 책 가격의 10%가 아니라 스토 부인의 남편인 신학교수가 주장했던 절반으로 받았다면 더욱 큰 돈을 벌었겠지만, 그래도 스토 부인은 책 덕분에 부유한 말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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