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옥션배가 의외로 인기가 높다. 여류와 시니어만 참가하는 연승전인데 올해 제4기를 맞이한다. 이창호나 이세돌 같은 스타 플레이어는 구경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인기는 본격적인 기전보다 오히려 더 높다. 작년에는 차민수와 김종수 같은 시니어 다크호스가 여류를 압도하면서 인기몰이를 하더니 금년에는 정대상이 나섰다. 정대상은 프로기사 250명 가운데서도 이채로운 존재로 통한다. 그와 대국하게 되면 최정상급 고수들도 긴장하게 된다. 상식을 뛰어넘는 괴이한 방식으로 대마를 잡으러 오는데 한번 그 '천라지망'(지지옥션배 해설을 담당하고 있는 한철균7단이 자주 쓰는 표현)에 걸려들면 오금을 펴지 못하고 패하게 마련이다. 한국의 정상급은 물론이고 일본과 중국의 간판급 기사들도 모두 한번씩은 혼이 났는데…. 박지연2단을 상대로 정대상은 외목을 두더니 대사백변으로 몰아쳤다. 박지연의 거대한 흑대마가 허겁지겁 쫓겼다. 거의 그로기 상태에서 박지연은 겨우 패를 내긴 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진 상태였다. 대마를 살려주고 정대상이 다른 큰 곳을 연타하면 이기는 바둑이 되었다. 기고만장한 정대상은 필살의 수순으로 들어갔다. 실수였다. 팻감 하나 차이로 박지연의 흑대마가 살면서 백이 도리어 궁지에 빠졌고 결과는 정대상의 불계패였다. 한국 여류의 수준이 달라졌음을 여실히 보여준 한판이었다. 정대상 사범. 힘내시게. 백88은 반상최대. 89의 자리도 크지만 백88이 역시 더 급한 자리일 것이다. 흑91로는 참고도의 흑1 이하 5로 두는 편이 나은 것 같다는 것이 최원용의 의견이었으나 그 선악은 단언하기 어렵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국자 양인이 저마다 바둑이 유리하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 검토실에서는 아주 미세하다고 보고 있었는데 특히 이세돌은 여유있게 이긴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승부의 긴장을 떨어뜨리고 말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