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어렵다. '번역자는 반역자다(Translators, traitors)'라는 말까지 있다. 다른 언어를 뜯어보고 옮기는 번역이 이럴진대 듣고 바꿔야 하는 동시통역은 오죽하랴. 최고 실력의 통역자가 붙는 정상회담에서도 오역이 종종 나온다. 1977년 폴란드를 방문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폴란드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통역이 '폴란드 여인에게 욕정을 느낀다'라고 오역해 웃음거리가 됐다.
△2005년 11월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미국 측의 신출내기 통역이 실수를 저질렀다. '부시 대통령이 북측에 경수로를 적절한 시기에 제공할 것'이라고 통역했는데 사실과 반대였다. 초짜 통역에 앞서 17년간 한미 정상회담을 도맡아온 전문통역조차도 종종 오역 논란에 쌓였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한국계 미국인인 미국 측 통역에 대해 불만을 갖고 교체를 압박한 적도 있다. 통역을 두고 갈등할 만큼 이 시기 한미 관계는 편치 않았다.
△오역보다 더 문제는 의도된 오역이다.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는 발언 때문에 호전주의자로 지목됐던 이란의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미국과 이스라엘의 의도적인 오역'이라고 몰아붙였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동물사료 금지 조치를 잘못 해석해 논란을 불렀다. 원래 내용을 고의적으로 왜곡했다는 의혹은 '광우병 촛불'을 키웠다.
△의도된 오역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국익 침해다. 박근혜 대통령을 면담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의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절대 좋은 베팅이 아니다'라는 발언은 무례를 넘어 협박으로도 간주할 수 있었던 사안인데 외교부가 오역이라고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해명할 주체는 외교부가 아니라 미국이다. 정부는 가만 있고 언론이 이 발언을 문제 삼았다면 우리 정부의 입지가 강해질 수도 있었다. 상대의 실언으로 인한 국익 증진의 기회를 외교부 스스로 걷어찬 셈이다. 몸에 밴 사대주의는 오욕(汚辱)을 부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