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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사실상 마이너스 시대에 진입하면서 저물가가 우리 경제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지,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관건은 저물가 기조가 고착화될 것이냐의 여부에 달린 것으로 분석된다. 저물가가 단기간에 그칠 경우 경기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장기화할 경우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는 등 경기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가하락…단기냐, 장기냐에 효과 갈려=일단 단기적인 물가 하락은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살아 있다면 소비자들은 기존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된다. 기업들 역시 원자재 가격 하락에 따른 비용 감소로 상품 가격을 내릴 여지가 생긴다. 직원들의 임금도 올려줄 수 있다. 이는 소비 증가로 이어진다. 이른바 물가 하락→소비 증가→기업 이윤 및 임금 증가→경기 활성화의 선순환 효과다.
하지만 물가 하락이 장기화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최근 우리 경제는 저물가 기조가 2년여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3년과 2014년의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각각 1.3%였다.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년 연속 1%대를 기록한 것은 통계 작성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아예 0%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저물가 기조가 계속되면 소비자들은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접게 된다. 소비와 기업의 생산·투자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커진다. 물가 하락→소비 감소→기업 이윤 및 임금 감소→경기 둔화의 악순환의 고리로 연결된다. 최근 저물가 기조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현재 저물가 원인은 공급 요인…수요 위축으로 전이되면 위험=정부는 현재 저물가의 원인을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공급 요인에서 주로 찾고 있다. 소비 감소 등 내부 요인보다 국제유가 하락 등에 따른 외부 요인이 더 크다고 본다. 실제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에서 석유류가 차지하는 기여도는 -1.29%다. 이를 제외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8%로 오르는 셈이다. 석유류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달 대비 무려 24.3% 급락했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85년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석유류 물가 상승률은 1월에도 같은 기간 20.4% 급락했었다.
농산물 및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지난해 2월보다 2.3% 올라 2개월 연속 2%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9~12월에는 4개월 연속 1%대를 나타냈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내수 회복에 따라 수요 압력이 발생하면 물가가 다시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저물가가 당분간 지속되겠지만 수요 위축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재 저물가의 요인은 공급과 수요 모두 혼재된 결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 저물가의 가장 큰 이유가 국제유가 하락이라고 해도 수요가 활발했다면 하락폭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외부 요인에 영향을 많이 받는 공급 요인은 일시적 현상에 그칠 수 있지만 내부 요인인 수요는 한번 위축되면 여간해서는 회복되기 쉽지 않은 특성을 지녔다.
◇경상 성장률 비상…4년 연속 대규모 세수 펑크 우려=저물가 기조가 위험한 것은 경상 성장률과 세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부는 경상 성장률을 기준으로 한해 세수 계획을 짠다. 현재와 같은 저물가 기조가 계속되면 정부가 지난해 예측했던 경상 성장률 3.8%보다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더라도 세수는 계획보다 덜 걷힐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 3년간 이를 너무 높게 잡다 보니 세수가 목표치보다 덜 걷혀 대규모 세수 펑크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급 요인이 수요 요인으로 전이돼 디플레이션에 빠지지 않도록 보다 적극적인 정책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제유가 하락과 미국의 경기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수출과 내수 활성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물가는 국제유가 하락 외에도 소비심리 위축 등 수요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진 현상"이라며 "지금은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보다는 위축된 소비심리를 살리기 위해 보다 선제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