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한심한 유화업계

“먼저 고자질하고 혼자만 쏙 빠져 나가는 게 말이 됩니까.” 짧은 설 연휴가 끝나고 다시 업무가 시작된 지난 20일. 본지가 처음으로 ‘유화업계 자수경쟁’ 기사를 내보내자 관련기업들로부터 불만과 하소연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마침 이날 공정거래위원회가 총 10개사에 1,051억원이라는 엄청난 과징금을 부과한 터라 기업들의 반발도 클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호남석유화학이 지난 2005년 4월 공정위 조사착수 단 이틀 만에 공정위에 달려가 담합사실을 자백하곤 시치미를 뚝 뗐다”고 어이없어 했다. 또 “몸통은 빠져 나가고 피라미들만 처벌받았다”며 한결같이 울분을 토했다. 지난해 5월 두번째로 자진신고를 했던 삼성토탈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난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들 두 회사를 공격하던 다른 기업들도 똑같이 ‘자복경쟁’을 벌인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폴리프로필렌(PP) 등에서 호남석화와 삼성토탈에 자진신고 1, 2위를 내준 LG화학은 지난해 중반께 에틸렌글리콜(EG)와 에틸렌옥사이드(EO)의 카르텔 행위를 맨 먼저 털어놨다. 이를 알게 된 삼성토탈은 바로 스티렌모노머(SM) 담합을 가장 먼저 고백했고 마지막으로 SK㈜까지 서둘러 공정위 사무실로 뛰어갔다. 각 품목마다 3~5위를 한 기업들이 줄줄이 서있는 것을 보면 “신의를 저버렸다”는 상대에 대한 비난은 정말 우습다. 너 나 할 것 없이 공정위 문을 두드렸던 기업들이 상도의를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가당착이다. 한마디로 ‘누워서 침뱉기’인 셈이다. 문제는 이처럼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유화업계의 눈앞에 정작 피해자인 중소기업들과 국민이 없다는 점이다. 무려 10년 넘게 카르텔을 저질러 국민들이 입은 경제적 손실액은 1조6,000억원대로 추산된다. 조사 중인 다른 품목들을 합치면 총 피해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이다. 자유시장질서를 해치고 국민경제를 멍들게 한 이 같은 ‘반시장 행위’가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아마도 회사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사장들이 무릎을 꿇고 국민들에게 사죄의 큰 절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차제에 유화업계의 이익단체인 석유화학공업협회를 해체하고 담합을 저지른 기업들의 경영진은 옷을 벗어야 하는 게 도리다. 그런데도 유화업계는 시기심에 사로잡혀 서로 헐뜯기에 정신이 팔려 있다. 이런 유화업계를 바라보는 국민들이 반기업정서를 느끼지 않는 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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