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청와대가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이반의 해법으로 인적쇄신이나 개혁은 하지 않겠다고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그 대신 현체제로 정책보완을 통해 민심을 수습하겠다는 것이 당청의 일치된 목소리다. 극심한 민심이반을 해소할 마땅한 대안이 없어 나온 궁여지책이지만 사사건건 다른 목소리를 내던 당청이 유독 '자리보전'에만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민심을 더욱 싸늘하게 만드는 모양새다.
28일 청와대는 서울시장 선거 패배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지만 마땅한 쇄신안이나 후속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다만 이날부터 수석회의를 통해 민심을 수습할 수 있는 정책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2030세대의 이탈에 충격을 받은 한나라당도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원론적 목소리만 낼 뿐 당지도부의 입장 등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방향을 잡지 못했다.
당초 임태의 대통령실장의 사의표명 논란에 당 지도부가 긴장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선(先) 민심수습, 후(後) 인적개편'으로 가닥을 잡으며 흐지부지됐다.
임 실장의 사의표명 논란에 대해 한나라당은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지도부는 사퇴에 반대하지만 내부에서는 사퇴해야 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전날 저녁 임 실장의 사퇴표명 보도가 나온 후 발끈한 사람은 홍준표 대표. 그는 이날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임 실장의 사퇴는 청와대가 할 일이지 당이 나서 사퇴하라 마라 할 일이 아니다"라며 더 이상의 논란을 일축했다. 김기현 대변인도 "대통령이 임 실장이 계속 일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는데도 당이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대통령 인사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는 현지도부를 대체할 대안도 없으면서 청와대에서 당지도부로 사퇴론이 번지는 것을 경계한 까닭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해 오는 2012년 예산안 등을 지도부가 나서 처리해야 한다는 이유도 있다.
남경필 최고위원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인적쇄신을 하려면 여권 전반을 다 뜯어고쳐야 한다"며 "그러나 더 근본적인 변화를 고민한다면 (임 실장이) 물러나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소장파를 비롯해 이재오 의원은 물론 일부 친박근혜계 의원들까지 임 실장이 이번 서울시장 선거 패배를 자초한 '내곡동 땅' 논란의 책임자이므로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사퇴수습 이후에는 물러나는 게 맞는다는 주장이다.
청와대도 섣불리 임 실장 사퇴 등 카드를 꺼내기가 힘들다. 당에 앞서 청와대가 인적개편 카드를 꺼내 들 경우 서울시장 선거 패배의 책임을 모두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이 대통령과 청와대의 후반기 국정운영은 곧바로 레임덕(권력누수)으로 이어지고 정책의 주도권도 놓칠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청와대는 일단 정책적 대안으로 민심을 수습하고 서울시장 선거의 여진이 가라앉을 즈음 인적개편 카드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때가 돼서 바꾼다는 모양새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에서도 민심수습 후 인적개편이 계산대로 이뤄질지 우려하고 있다. 자칫 '그 밥에 그 나물식' 정책대안으로 민심을 수습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킬 경우 그에 따른 책임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청년실업ㆍ물가 등에 대한 수많은 대책이 나왔지만 돌아서버린 민심을 잡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