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궁극적 목적은 사회적 정의의 실천이며국가는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따라서 불법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나 보상이 배제된 한ㆍ일 청구권 협정으로 식민지배에 따른 개인의 피해 보상을 국가를 상대로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국제법학자인 백충현(66)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국정부에 의해 일부 공개된1965년 한ㆍ일 청구권 협정 관련 문건을 통해 두 나라 정부가 식민지배에 따른 개인의 피해보상 청구권을 박탈한 사실이 밝혀진 데 대해 "개인의 (피해보상 청구) 권리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18일 강조했다.
백 교수는 "(현행 국제법으로는) 개인이 다른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없으므로, 그런 일은 개인을 대신해 국가가 다른 국가를 상대로 해결해야 하며, 그것을 `외교적 보호권'이라고 부른다"면서 "따라서 식민지배에 의한 우리 국민의 침해된 권리 또한 우리 국가가 국민을 대신해서 보상을 받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ㆍ일 청구권 협정에서 두 나라 정부는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에 대한명확한 가해 사실이나 사과의 뜻을 표명하지 않은 채 `경제협력자금'이라는 명목으로 과거사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다. 더구나 이 청구권 협정 2항에는 `(개인 청구권이) 최종적으로 완전히 해결됐다'는 문구까지 삽입됐다.
백 교수는 "당시 `경협자금'을 제공하면서 일본정부는 한국의 독립축하금이니,경제협력을 위한 것이니 하는 그럴 듯한 명목으로 포장했으나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이 없다면) 그렇다면 왜 (일본정부는 경협자금을) 제공했겠느냐"고 반문했다.
나아가 한국 정부는 "그 명목이 무엇이건 불법식민지배에 기초한 자료를 토대로배상액을 받아냈다"는 사실을 백 교수는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백 교수는 "한ㆍ일 국교정상화 회담처럼 (국가간) 전후 처리를 할 때는 개개인의 권리와 피해보상까지 포함해서 국가가 대신해 그것을 일괄처리하는 방식이 보통"이라면서 "이럴 때 그 내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백 교수에 의하면 한ㆍ일 청구권 협정의 경우 첫째, 개인의 권리 문제가 매우 불분명하며, 둘째, 영토 문제, 특히 대한민국 영토에 북한이 포함되느냐 하는 문제도 불확실하게 넘어가고 말았다.
따라서 백 교수는 "이 협정이 겉으로 보기에는 일본에 유리한 듯하나 근본적으로 식민지배 책임을 법적으로 보상하거나 배상했다고 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점을지니고 있다는 일본 스스로가 발목을 잡히는 꼴이 됐다"면서 "이 책임성 문제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백 교수는 "일본에서는 정부뿐 아니라 법조계라든가 학계에서도 식민지배로 인한 한국 피해자들의 일본정부에 대한 피해보상 청구권이 청구권 협정으로 소멸됐다는 광범위한 인식을 갖고 있다"면서 그러한 근거 중 하나로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의 한ㆍ일 과거사 발언을 들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전직 두 대통령은 두 나라의 미래지향적인 협력을 위해 식민지배에 대해 진솔한사과만 하면 불행한 과거는 덮어둘 수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하지만 백 교수는 "재산권이라든가 인권과 같은 개인(혹은 국민)의 기본권을 국가라든가 대통령이 그들에게서 박탈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이어 가장 중요한 사실은 "피해자가 있고, 가해자가 있으며, 피해 사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청구권 협정은 이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고, 따라서 그에 대한 반성이나 보상 조항이 없으므로 이 협정을 통해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견해는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백 교수는 "따라서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과 보상을 방기한 일본정부는 결코 과거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우리 정부 또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는커녕그것을 박탈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책임이 있으므로 두 나라 정부를 상대로하는 전후보상 개인 청구권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