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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 잡는 워크아웃] 지원 없이 핵심자산 팔아 빈껍데기로 … 당국은 "개입 한계" 뒷짐

워크아웃 7개 건설사, 부채 절반 줄었지만 존립 가치마저 없어

정상화 불가능 지경

"채무 동결·재투자 기회… 차라리 법정관리 선택"


2010년 워크아웃 중이던 A건설은 공공토목 부문 진출을 회사의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영업조직을 정비하고 인원을 확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당시 주채권은행이 비용절감 등의 이유로 반대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 회사를 퇴직한 한 직원은 "주택시장은 포화 상태여서 더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며 "하지만 은행은 채권 회수에만 열을 올린 채 회사를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 회사는 워크아웃을 벗어나지 못한 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한때 500명에 달하던 직원은 현재 40여명으로 줄었다.

2009년부터 시작된 건설업체 구조조정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회생 가능성이 있는 건설사의 재무구조를 개선해 정상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취지와는 달리 건설업체 워크아웃은 부동산 호황기 무분별하게 진행했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의 책임을 건설업체에만 떠넘겨 은행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더욱이 워크아웃을 거친 건설사는대부분 핵심 자산 매각과 인력 감축의 과정을 거치면서 껍데기만 남아 더 이상 기업으로서 존립 가치가 없는 지경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빚 갚고 나니 빈껍데기뿐= 건설업체 워크아웃의 가장 큰 문제는 워크아웃을 성실히 이행하더라도 정상화가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채권 금융기관은 부실 전이를 차단하기 위해 건설사가 미래 사업용으로 보유한 자산을 매각해 부채를 줄이는 데만 신경을 쓸 뿐이었다. 일단 금융권 차원에서 본다면 워크아웃은 유효한 수단이 됐다. 현재 워크아웃이 진행 중인 7개 건설사의 워크아웃 전 총부채는 11조4,000억원 정도였지만 2012년 말 5조5,000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기 때문이다.

반면 지원이나 사업에 대한 재투자는 인색했다. 단적인 예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건설이다. 지난해 3월 워크아웃 개시 이전에 진행된 실사에서 쌍용건설의 존속가치는 청산가치(4,318억원)의 두 배에 달하는 8,227억원이었지만 매각에 실패하고 채권단 지원이 늦어지면서 지난해 11월 실시된 실사에서 존속가치는 4,170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업계 관계자는 "채권단의 시기적절한 지원이 없었던 게 법정관리로 들어선 가장 큰 원인"이라며 "어려운 와중에도 해외에서 꾸준히 수주를 해왔던 쌍용건설이 결국 부도를 맞은 것에는 채권단에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부채 감소에만 집중하고 적절한 지원과 투자가 없는 워크아웃은 결국 기업의 경쟁력 악화로 이어졌다. 현재 워크아웃이 진행 중인 건설사 대부분이 워크아웃 전과 비교했을 때 매출은 절반 이상 줄고 수익성이 악화된 것도 이 때문이다. S건설의 경우 2007년 1조4,000억원이 넘는 수주실적을 기록했지만 지난해에는 3분의1에 불과한 4,900억원 수주에 그쳤으며 K건설 역시 2008년 2조2,000억원을 수주했지만 지난해에는 절반 수준인 1조1,000억원 정도로 실적이 급감했다. 워크아웃 건설사 관계자는 "워크아웃에 따른 기업의 신용도 하락으로 수주에 불리해진 것은 분명하다"며 "하지만 채권단이 핵심 영업조직 축소를 요구하고 비용 절감에만 관심을 두면서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것도 주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지적했다.


◇컨트롤타워 필요한데… 손 놓은 당국=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산업적 측면에서 워크아웃 전반을 관리하는 정책 당국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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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워크아웃에 들어선 업체는 신규 수주를 위해 필요한 보증 문제 때문에 영업활동이 쉽지 않았다. 또 자산 할인매각 등으로 마련된 돈도 채권단이 가진 부채를 갚는 데만 쓰여 재투자를 할 여력도 없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책 당국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근거법령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 정부 개입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워크아웃 과정의 주요 의사결정을 모두 채권단과 업체 간 협의를 통해 하게 돼 있어 정부의 조정기능이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기촉법이 일몰이 예정된 법인데다 '정부의 시장 간섭'이라는 위헌 논란까지 더해진 상황이라 손 대는 것 자체를 꺼리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경기가 최악이다 보니 재무구조를 개선해도 기업이 정상화되기가 쉽지 않고 그렇다 보니 채권단도 보수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감독 당국의 조정권한이나 비협약채권도 기촉법 안에 넣어야 하지만 법리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책 당국이 뒷짐만 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워크아웃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업계에서는 구조조정의 방법으로 법정관리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적어도 법정관리하에서는 채권회수를 위한 무조건 할인매각은 피할 수 있고 채무 동결과 함께 재투자의 기회도 마련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행 워크아웃 제도가 건설업체에 대해서는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며 "건설업의 경우 자산이 영업활동의 기반인 경우가 많아 이런 특성을 고려한 새로운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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