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보면 오늘날 우리나라가 IMF 위기에 빠진 것도, 무차별적이고 전폭적인 대출지원을 받아 문어발식 기업확장 등 중복과잉투자를 일삼은 재벌과 이들에게 엄격한 대출심사를 실시하지 않았던 금융기관의 모럴헤저드(MORAL HAZARD)에 기인한 것으로서, 이 또한 공정한 경쟁을 무시한 부정의 일면이라 해야 할 것이다.우리나라 뿐만 아니다.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둘러싼 IOC 위원들의 뇌물스캔들도 세계인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고대 그리스올림픽 경기 참가자격 요건 중에 형벌받은 사실이 없어야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음을 되돌아 보게 한다.
과연 부패는 물질적 탐욕을 외면할 수 없는 인간의 원초적 심성에 기인하는 것인가, 아니면 부패사슬을 형성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모순구조에서 연유하는 것인가, 또는 개인과 사회구조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인가.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물욕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인류가 진보할 수 있었던 것도 이윤의 추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것은 곧 생산력과 생산수단의 발전·개발을 추동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한 이득은 사회의 공정성과 질서체계를 저해하고, 두고두고 정신적 회한의 굴레로 남는다는 이성적 통제가 바로 이익추구과정에서 작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태생적으로 부패의 굴레를 안을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은 보편성을 획득하기가 어렵다.
통념적으로 인류 역사상 부패의 정도가 가장 심한 사회단계는 사적 이윤의 추구를 기본 동기로 삼는 자본주의 체제라고 한다. 그러나 부패는 비단 자본주의 체제에서만 심각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적 소유를 불허하여 개인의 이윤추구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사회주의체제에서도 부패로 인해 국가 자체가 붕괴되었던 역사적 경험이 이를 웅변한다.
즉 정권의 정통성이 결여된 사회일수록, 권력이 경제와 유착된 사회일수록, 정론과 직필로 사회를 감시해야할 언론이 권력의 하수인이 된 사회일수록, 국가권력과 국민이 반부패에 대한 컨센서스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일수록, 부패사슬의 정도는 더욱 심각하다. 따라서 부패는 인간의 허욕(虛慾)이 부패한 사회구조와 결합될 때 확대 재생산됨을 확인할 수 있다.
정약용 선생이 목민심서에서,「뇌물수수는 당사자가 은밀히 하더라도 한밤중의 수수행위조차 반드시 아침녘이면 세상에 알려지기 마련이다」고 한 경구는 예나 지금이나 섬뜩한 교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