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미래먹거리 키울 빛나는 한 수

서동혁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실장


영화를 평가하는 좋은 잣대 중 하나는 극적인 반전이 있는지의 여부이다. 그런 영화를 본 관객들은 평소에 겪기 어려운 짜릿함과 몰입을 맛본 후 미소를 짓고 나온다.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를 떠올리며 신성장동력 육성에서도 유쾌한 반전을 각색할 시점이 왔다고 본다.

며칠 전 민간주도로 9개 전략산업, 4개 기반산업으로 구성된 13개 미래성장동력이 선정됐다. 심해저 해양플랜트, 재난안전관리 스마트시스템은 처음 발굴됐고 지능형 반도체, 스마트카, 5G 이동통신은 핵심주력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분야다. 빅데이터·웰니스·사물인터넷 등은 스마트 사회로의 전환에 대한 호응이라 할 만하다.


정책지원·규제개혁 성장동력 밑거름

한국경제가 직면한 저성장 고리를 끊지 못하면 소득 4만불 시대는 점점 멀어져 간다. 불확실성 시대일수록 믿을 수 있는 것은 확실한 기대주이며 정부나 기업 모두가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도 이 때문이다.

지속적인 성장동력 탄생은 경제발전을 넘어 풍요로운 미래 삶의 보증수표다. 고속도로에서 무인주행 자동차가 운전하는 동안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며 안락함을 만끽하고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는 지능로봇의 도움을 받아 큰 불편 없이 활동할 수 있다. 사물인터넷이 활성화되면 퇴근시 주차가능 공간을 알아서 찾아주고 집에서는 온도가 자동조절돼 쾌적함을 느낀다.


그러나 기대는 금물이다. 그동안 수차례 성장동력 육성노력이 있었지만 아쉬움이 크듯이 국민적 공감대와 투자가 있더라도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육성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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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성장동력은 그 시대 산업육성 의지를 투영하는 거울이다. 한때 외국 언론의 조롱감이던 포니 차는 세계 5위 자동차 강국을 만들어냈다. 1990년대 초에는 64MD램 독자개발이 숙원이었고 그 성공은 메모리 반도체 왕국의 씨앗이 됐다. 소니에 밀려 숨죽였던 한국 TV는 디지털로 무대가 바뀌자 보르도 TV라는 디자인혁신 아이콘으로 소니를 흔들었고 지금 세계 TV시장의 40%는 한국 브랜드다. 돌이켜보면 이런 '빅'성장동력을 잉태했던 기업가정신, 위험감수 선제투자, 정책지원의 패키지는 정말 빛나는 한 수였다.

실패를 창조의 화수분으로 삼고 아이디어 하나로도 성공 가능하게 하며 미국 쿼키 같은 창업 플랫폼의 활성화를 유도하고 한국의 프라운호퍼(독일의 응용기술 연구기관)를 만드는 일 등은 우리가 그동안 애써 무시해온 숙제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열쇠로는 열린 문화, 기업가정신, 창의성, 정책의 끈기, 그리고 규제 개혁 등이다. 이 모두가 미래성장동력 육성의 기본 조건들이다.

혁신기업 M&A·인재발굴도 필수

성장동력을 내부에서만 키우려는 생각도 바꿔야 한다. 탄소섬유 세계 1위 도레이는 3위 졸텍을 인수했으며 구글은 8개 로봇회사를 연달아 인수했다. 최근에는 애플이 전기차 선두 테슬라와 접촉한 사실이 알려져 관심을 끈다. 애플은 신흥 전기차업체 인수로 스마트카에서 획기적 반전을 시도하려는지도 모르겠다. 혁신역량 일부를 외부 조달하는 것은 이제 대세가 됐다.

새 먹거리를 가꿀 인재상도 다시 구상해야 한다. 호기심 가득한 탐구욕, 충만한 감성과 열정, 개방성을 가진 인재들이 이끄는 미래는 한층 밝아질 것이다. 아울러 성장동력 육성의 주역은 기업임을 기억해야 한다. 과거 성장동력 후보들이 주목만 받고 꽃피우지 못한 데는 기업의 투자기피가 큰 몫을 했다. 기업이 한국경제를 책임진다는 주인의식이 가장 강한 나라로 가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접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는 노트북 개발자 앨런 케이의 말이 새삼 울림을 준다. 미래성장동력에 대한 절박함이 크다면 기업과 정부 모두 새로운 접근법으로 출발선에 서야 한다. 이제는 창조경제에 걸맞은 희망의 반전이 필요하다. 제2의 '빛나는 한 수'는 향후 10년 이상을 꿰뚫는 정책 철학의 재정립이며 실행력 강화에서 시작하자. 총알은 방아쇠를 당길 때 0.5도만 틀려도 목표를 벗어나 버린다. 단기성과에 집착하느냐 장기적 통찰력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미래성장동력의 성적표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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