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與敎育首長金振杓(여교육수장김진표시)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꿰뚫고, 오묘한 계산은 땅의 이치에 닿았도다, 전쟁에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을지문덕 장군이 고구려를 침공해온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다. 요즘 김진표 교육부총리의 언행을 보노라면 엉뚱하게도 이 시가 떠오르곤 한다. 손바닥 뒤집듯 바뀐 소신 필자는 5년 전 당시 재정경제부 차관이던 김 부총리를 보고 홀딱 반했다. 본지 창간기념 기획기사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시리즈 마무리 좌담회에서 였다. 겸손함과 사안의 다면성을 두루 꿰뚫는 균형감각,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정연한 논리, 탁월한 업무능력 등등. 요즘 말로 ‘필’을 강하게 받은 것이다. 그 뒤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 최고의 관료라고 칭찬하고 경제부총리ㆍ교육부총리로 승승장구할 때는 마치 내 일처럼 흐뭇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의 열렬한 팬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을 바꿔야 할 것 같다. 그의 소신의 변화무쌍함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 뜻을 새삼 절감한다. 그의 교육부총리 임명에 교육계는 크게 반발했다. 교육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경제전문가로서 교육에도 적절한 경쟁원리와 자율성을 도입하는 개혁으로 평준화 틀을 허물지 않으면서도 교육의 질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경제부총리 때 보여준 교육철학, 그리고 ‘대학도 산업이어야 한다’는 대통령이 발언이 있고 난 후 그가 교육부 장관이 됐다는 점을 미뤄보면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산업은 곧 경제고, 경제의 핵심논리는 경쟁과 자율성이며 이는 김 부총리의 교육관과 일치하는 것 아닌가. 재경부 시절 그는 교육부와의 마찰을 무릅쓰면서 교육개방을 주장했으며 판교와 강북 지역에 외국어고 등 특목고와 자립형사립고 설립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요하면 학원강사를 방과 후 학교수업에 동원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것 역시 교육부나 전교조 등으로부터 ‘물정 모르는 소리’로 비판받았다. 이렇듯 확고한 소신과 강단 있는 행동의 그가 정작 교육정책 수장이 된 후로는 확 변해버렸다. 외국어고는 확대가 아닌 규제해야 할 학교로, 자사고는 사교육을 조장하는 ‘귀족학교’로 전락했다. 영어교육에 큰 효과가 있는 ‘영어마을’은 그만 만들어야 할 대상이 됐다. 그 뿐 아니다. 지난해 서울대가 통합 교과형 논술 도입을 발표하자 환영의 뜻을 밝혔다가 황급히 입장을 바꾸기도 했다. 그의 변신이 놀랍다 못해 신묘하다는 느낌이다. 이쯤 되면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일부에서는 교육부 밖에 있을 때는 몰랐던 교육의 실상을 알고 난 뒤에 오는 당연한 변화라고 말한다. 그러나 ‘보신을 위한 굴절’이라고 보는 쪽이 훨씬 많다. 정황상 그런 시각을 갖는 게 무리도 아니다. 서울대 논술에 대한 환영입장은 노 대통령의 ‘나쁜 뉴스’라는 한마디에 이것저것 따질 새 없이 부랴부랴 규제 쪽으로 바뀌었다. 자사고에 대한 공격도 대통령의 양극화 언급 이후 나왔다. 코드맞추기 비판 새겨듣기를 그럴 리 없으리라 믿지만 그의 교육철학 변화가 정말 보신을 위한 것이라면 학부모ㆍ학생, 나아가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다. 그런 교육이 개인의 영달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불신의 대상이 된다면 나라의 미래는 어두울 뿐이다. 하긴 그를 탓할 일만도 아니다. 경제부처를 비롯해 보신주의자가 어디 한둘인가. 누군가 이들을 두고 이렇게 읊을지도 모르겠다. ‘信變究天文 屈身窮地理 俗揚名旣高 知足願云止(소신 뒤집기와 몸 굽히기의 오묘함이 천지의 이치를 꿰뚫었도다, 이미 세속의 출세를 할만큼 했으니 이제 족함을 알고 그침이 어떤가). 을지문덕 장군의 충고(?)를 무시한 우중문은 대패의 망신을 당했으며 그 패전은 수나라 멸망의 원인이 됐다고 역사는 전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