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거인 미국 경제부터 갈 지(之)자를 걸으면서다. 미국의 적자에서 출발한 글로벌 경제 불균형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예민한 시기, 논란의 도마 위에 있는 미국 경제 현황부터 시리즈로 진단해본다.』
세계 경기 침체에 대한 시그널을 처음 시장에 공식 제기한 건 지난 달 세계은행 보고서다. 때마침 미국 경제의 흔들림이 감지됐다. 특히 세계 경제의 성장 동력인 소비 부문에서다. 치솟는 유가가 먼저 눈에 들어온 원인이라면 미국의 천문학적 쌍둥이 적자와 맞물린 달러 약세와 금리 인상 기조 등은 보다 구조적 문제들이다. 금융시장부터 냄비 장세다. 일시적 현상일까, 아니면 장기 침체의 전조(前兆)인가. 미국 경제 행보에 눈길이 쏠리는 건 세계 경제에 대한 절대적 영향력도 영향력이지만 달러 약세와 글로벌 불균형의 문제가 첨예하게 맞물린 시점이기 때문이다. ▦소프트 패치 논쟁=일반에게 익숙치 않은 ‘소프트 패치’(soft patch)는 경기 상승기간 중에 나타나는 일시적 둔화 국면. 정보기술(IT) 버블이 꺼진 후 지난 2003년부터 경기 회복세를 탄 미국 경제가 소프트 패치에 들어섰다는 주장이 제기된 건 최근 들어서다. 논쟁의 관점은 2가지다. 우선 최근 상황을 ‘지나가는 소나기 정도’로 보는 낙관론. 그 근거는 무엇보다 미 경제의 성장 모멘텀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이다. 고유가 등으로 인한 소비 위축도 일시적 현상으로 실제 JP모건 등 경제 관련 기관들은 3분기 미 경제 성장이 다시 4%대로 올라설 거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기업 마진이 양호하고 투자가 늘 것이란 기대를 접지 않고 있다. 비관론자들은 진단부터 다르다. 특히 지난 주말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년 만에 최저인 3.1%로 떨어졌다는 상무부 발표 이후 회의적 분위기는 커졌다. 불과 몇 주 전만해도 인플레 리스크에 집중됐던 시장 관심이 소프트 패치를 거쳐 경기 침체 우려로 중심 이동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인들에게 자본이득을 안겨주며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창출했던 부동산 시장부터 주춤하며 내구재 소비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CNN이 지적한 장단기 국채 수익률 스프레드 축소도 경기 둔화의 징표 중 하나다. 과거 사례에서 보면 특히 단기 금리가 장기 금리를 따라 잡을 경우 경기 침체가 수반됐다. 장단기 수익률 차에 큰 폭 갭이 생긴 때 금융업체들이 신용을 확대, 수익을 키우는 절호의 기회가 돼온 상황과 지금은 반대의 경우다. ▦고민하는 FRB, 방향 잃은 시장…금리 인상 속도 조절론 부상=‘권위’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올들어 어쩐지 자신감이 떨어지는 모습이다. 금년 초 인플레 리스크를 시사한 회의 보고서로 시장에 큰 파장을 준 이래 금리 정책에 대한 결정력이 흔들리며 금융시장을 향한 예전의 카리스마가 다소 퇴색돼가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인플레 리스크와 성장 둔화 리스크의 상호충돌 과정에서 드러난 FRB의 딜레마 때문이다. 최대 현안인 쌍둥이 적자와 관련 미국이 금리보다는 외환 정책으로 문제를 풀어보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현재 미국 경제에서 가장 주목되는 관건은 뭐니 뭐니 해도 FRB에 의한 금리 향배다. 당초 예상됐던 급격한 인상이 당초 예상보다 인플레 압력이 약하다는 평가로 점진적 속도(measured pace)를 유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각종 지표가 인플레 우려보다는 성장 둔화 조짐을 보이는 데 따른 분위기 반전이다. 이에 따라 시장도 춤을 추고 있다. 연초 3년 만에 최고 치에 올라섰다 추락한 증시는 연일 냄비장세를 보이고 있고 바닥 모르고 오르기만 하던 부동산 가격이 주춤거리며 시장은 눈치를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미 경제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 상태라는 주장이 향후 미 경제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운을 뗀 이 주장에 동조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GDP 디플레이터가 3.2%로 예상치를 초과하며 무역수지 적자 확대와 함께 소비는 위축, 재고는 늘며 인플레 등 물가 압력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진단이다. ▦글로벌 재조정 과정 거치며 장기적 성장 둔화 예상=치솟는 유가로 인한 소비 위축 등 국내 요인들 만으로 최근 미 경기 상황을 설명하는 건 지나친 단순화다. 글로벌 경제와 맞물려 지켜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적자-약 달러-글로벌 불균형으로 연결되는 재조정(rebalancing) 과정으로서 비쳐지는 경기 둔화의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한 미 경제가 앞으로도 큰 고민에 빠질 우려는 다분하다. 여전히 남의 탓만 하고 있지만 자국의 재정 건전화를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확대될 소비 감소와 금리 인상 등의 현상은 미국이 빚 청산을 위해 어쩌면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이기도 하? 미국 경제와 맞물린 대외 환경도 껄끄럽다. 이미 IMF는 유럽과 일본의 성장 둔화에 세계 경제 예상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약 달러와 관련 외환 다각화 등 달러를 쌓아 놓고 있는 세계 각국의 자산조정(ascorrection)이 이미 시작된 조짐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당장 시장이나 경제가 무너져 내릴 가능성은 없지만 전반적으로 글로벌 증시 및 금융시장의 변동성 심화는 불가피하다. 침체까진 아니라도 적어도 시간이 꽤 걸릴 수 있는 경기 둔화 국면은 피해가기 어렵다는 얘기다. 제 아무리 센 미국이라도 밀고 나갈 벽이 구조적으로 너무 두터워 보인다. 세계 경제는 지금 미국을 필두로 반복적으로 불확실성에 노출돼가는 국면을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