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이 넘치는 현금을 어디에 사용할 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경기회복과 실적개선으로 보유현금이 사상최고 수준으로 불어나 있지만 저금리 기조 속에 사용처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다 보유현금을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등에 사용하라는 주주들의 압력이 높아지고 있어 과잉현금이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기업 보유 현금 사상 최고수준= 12일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에 따르면 현재 스탠더드 앤 푸어스(S&P) 500지수에 포함된 기업들의 현금보유액은 총 6,340억달러로 지난 2년간 54% 늘어났다. 이는 5년 전의 3,290억달러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많은 규모다. 기업들의 시가총액 대비 보유현금 비율도 지난 2000년 3.6%에서 현재 7.7%로 높아졌다. 또 비금융 S&P500 기업 중 보유현금이 부채보다 많은 기업은 전체의 32%로 5년 전의 17%에 비해 크게 늘었다. 기업들의 보유현금이 이처럼 급증하는 것은 수익증가와 함께 지출감소 요인이 겹쳐 있다. 특히 지난 2000년에서 2002년 사이 힘든 나날을 보냈던 정보통신(IT) 기업들은 보유현금을 쓰는데 더 소극적이다. 일부 IT기업들은 현금을 풀어 배당을 늘릴 경우 시장에서 성장이 멈춘 기업으로 인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1ㆍ4분기 기준 30억달러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EMC의 마이클 갈란트 대변인은 “시장에서는 유동성을 보장하고 미래 성장을 위한 자금줄이 되는 현금이 왕”이라고 말했다. ◇보유도 투자도 어렵다= 기업 입장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저금리 기조 아래 현금을 마냥 보유하고 있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으면 현금보유에 따른 수익이 줄어드는데다 부채를 빌려 사용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이 주주들의 압력으로 보유현금을 값비싼 기업인수 등 부적절한 용도로 사용하게 되면 기업에 해가 되는 것은 물론 갑작스러운 경기침체에 대비할 수 있는 체력도 떨어지는 것이 고민이다. 모건스탠리의 헨리 맥베이 수석투자전략가는 “기업이 현금을 많이 보유할수록 좋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의 수준은 좀 지나친 것으로 보인다”며 “이 문제는 내년 주식시장 최대 이슈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주들 압력 거세져= 기업들이 보유현금을 좀처럼 사용하지 않자 주주 및 기관투자가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이들은 기업이 현금을 풀어 배당 및 자사주매입을 늘리거나 아니면 수익성 좋은 신규사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의 억만장자 투자자이자 ‘기업사냥꾼’으로 유명한 칼 아이칸은 최근 보유현금이 풍부한 시벨시스템스나 밀란 래버러토리 같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보유현금을 사용하던가 아니면 기업인수에 나서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 같은 주주들이 압력 속에 실제로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은 지난해 64% 증가했고 지난 1ㆍ4분기에는 91% 급증했다. 멕베이는 “지난 2001~2002년 기업들의 가장 큰 문제는 막대한 부채였지만 지금은 현금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며 “만약 적절하게 사용할 수 없다면 현금을 주주들에게 돌려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