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권에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질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입법부 수장인 김형오 국회의장이 개헌론 불 지피기에 적극 나서 정치권 안팎이 주목하고 있다.
김 의장은 11일 "제헌절이 한 달 정도 남았는데 이때부터 헌법개정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이날 롯데호텔에서 열린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 주최 특강에서 "지금은 모든 것을 대통령이 책임지게 돼 있고 그래서 퇴임 후 불편한 관계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면서 "소신과 사명을 갖고 개헌을 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지난 20여년간 유지하고 있는 직선제에서 대통령 5명 가운데 4명이 불행한 결과를 맞았다"며 "이러한 부작용이 지금 엄청난 시련으로 느껴지는 만큼 개헌을 통해 국가 시스템을 재정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의장은 특히 개헌논의를 본격화화기 위해 제헌절 이전, 지난해 가동시킨 의장 직속의 헌법연구자문위원회를 통해 '4년 중임 대통령제'와 '한국형 권력분점제' 등 두 가지 방안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개헌 필요성과 관련, 여야도 5년 단임 대통령제의 권력집중이 갖는 문제점이 많다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조문정국으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격돌하는 상황에서 지난 9일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여야 원내지도부 수장인 안상수 한나라당,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가 한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안 원내대표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했고 이 원내대표는 개헌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안 원내대표는 "권력을 분산시켜 (대선에서) 지더라도 다른 기회가 있어야 한다. 그런 게 바로 프랑스에서 시행하고 있는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했고 이 원내대표는 "이번 제헌절을 계기로 개헌 논의의 서장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야는 개헌논의 시기에 대해 입장차가 크다. 여당은 경제위기를 비롯해 북핵 실험 등 국가위기 상황으로 내년 이후로 논의를 늦춰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청와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으로 더 이상의 국정혼란이 야기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개헌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여야가 입장차를 보이는 진짜 이유는 조문정국 이후의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셈이 달라 여당은 개헌논의를 미루려는 것이고 야당은 개헌논의를 본격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청와대가 정권 초반 개헌논의가 시작되는 것에 부담을 갖고 있어 본격화되지는 불투명하다. 청와대로서는 개헌논의가 불붙을 경우 각 정치 주체들이 중구난방으로 논의를 진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이런 거대담론으로 국민들이 동요할 경우 현 정부의 국정 장악력이 급격히 떨어질 여지가 커 부정적 입장이다.
이와 관련, 국회의장실의 한 관계자는 "의장께서 18대 국회 시작과 함께 개헌논의를 본격화하려 했는데 청와대에서 정권초기 왜 힘을 빼려고 하냐는 의견을 전달해와 논의가 주춤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