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어려움 속에서도 과학자들이 매년 극지로 가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오직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원초적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때문입니다.”
인천 송도의 극지연구소에서 만난 문혜원 연구원은 극지 연구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화여대에서 동물분류학 석사과정을 이수한 문 연구원은 제주도에서 해양생태계를 연구하면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지난 2009년 극지연구소에서 남극 해양생태계 연구자를 충원한다는 소식을 접했고, 그 기회를 잡으면서 본격적인 남극앓이가 시작됐다.
그렇게 남극 바다에 대한 열정을 키워가던 문 연구원은 지난 2011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극지연구소 캠퍼스 극지과학 전공 입학을 결심했다.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남극의 해양저서생물(해저면의 표면 또는 퇴적물 속에 서식하는 생물) 연구가 미흡하다는 것을 깨닫고, 직접 해결해보고 싶다는 책임감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수동적으로 연구를 해야 하는 일반 연구원의 한계도 UST 박사과정 진학을 결심한 요인의 하나였다.
문 연구원은 “전국 30여 개 정부출연연구원을 캠퍼스로 활용해 실무 연구중심 교육을 수행하는 UST의 시스템이라면 극지연구소에서 주도적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학생으로 신분이 바뀌었지만 연구의 주체성을 갖고 제가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문 연구원은 또 “출연연이 캠퍼스이다 보니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는 물론 타 기관과의 교류, 국제학회 개최 등 한층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며 “일반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학생들은 연구소에 입사한 뒤 이런 경험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에서 메리트가 크다”고 설명했다.
현재 극지연구소는 남극에 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과학기지를 운용하고 있다. 매년 두 차례 각 기지로 연구 인력을 파견하는데 6월경 출발하는 월동연구대는 1년, 남극의 여름인 11~12월경 배치되는 하계연구대는 3개월간 남극에 체류하며 연구활동을 수행한다. 문 연구원의 경우 2010년부터 4년 동안 출근도장을 찍으며 경험과 실력 모든 면에서 에이스로 인정받고 있다.
넘치는 열정에도 불구하고 문 연구원의 초기 남극 생활은 어려움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여성 연구자로서 주변의 노파심을 불식시키는 과정이 생각보다 힘겨웠다고. 처음 문 연구원이 남극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려 했을 때도 그랬다. 대다수 현지 연구자와 잠수사들이 여성의 몸으로는 견디기 힘들다며 강하게 만류한 것.
하지만 해양 저서생태계 연구를 물 밖에서 할 수는 없었기에 문 연구원은 꼭 잠수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석사 시절부터 쌓아온 문 연구원의 잠수 실력을 확인한 뒤로는 누구도 문 연구원의 잠수에 반대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지금껏 남극기지에서 바다에 직접 잠수하며 해양생태계를 연구한 국내 여성 과학자는 문 연구원이 최초다. 또한 현재는 남녀를 통틀어 문 연구원이 유일하다. 도대체 남극 바다의 어떤 매력이 그녀를 이토록 강하게 만든 걸까.
“남극 바다에 몸을 담그는 것 자체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죠. 게다가 제 눈으로 남극의 해양저서생물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지금까지의 제 연구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현장에 가보면 예상보다 상황이 많이 다르고, 변수도 빈발해 당초 계획의 대부분을 수정할 수밖에 없거든요. 책상 위에서는 연구의 영감도, 성과도 얻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