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분식회계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는 투자자에게 기업의 경영진과 회계사가 배상을 해야 한다는 서울지법의 판결은 '회계사 책임시대'가 도래했음을 말해준다.
지금까지 분식회계로 투자자 등이 손실을 입어도 회계법인이나 회사가 책임졌을 뿐 개별회계사는 배상책임에서 벗어났었다. 분식회계에 대한 공인회계사의 배상책임 판결은 우리나라에선 이번이 처음으로 앞으로 이 같은 소송이 뒤를 이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재무상태는 주가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이고,감사보고서는 재무상태를 확인시켜주는 가장 객관적인 자료다. 그런데도 P사는 99년 말 가결산 결과 매출 661억원에 당기순손실 23억원인데도 이를 매출 812억원에 순이익 53억원으로 분식회계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2명의 회계사는 10억원을 받고 이를 눈감아 주었다. 이 같이 고의로 분식한 회계를 믿고 투자한 사람이 손해를 봤다고 법원 판결문은 지적하고 있다.
분식회계는 P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동안 관행처럼 여겨져 왔었다. 공인회계사들은 일감을 얻기 위해 기업의 눈치를 보며 이를 묵인한 예가 비일비재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경영의 투명성이나 주주를 위한 경영은 기대할 수가 없었다. 분식회계가 일반화되다 보니 증권회사들 조차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오히려 주식매수를 추천까지 했다는 사실이 이번 P사의 판결문을 통해 드러났다.
이 같은 분식회계로 말썽이 나도 공인회계사들은 항상 책임 밖에 있었다. 과거 대우그룹의 분식회계 때문에 이를 담당했던 회계법인이 영업정지로 문을 닫았어도 회계사들은 별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다.
이들은 회사를 옮겨 회계사 업무를 계속했다. 회계법인은 망하거나 흔들려도 회계사는 영원하다는 '회계사 무책임 신화'가 오늘 같은 회계사 불신시대를 초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그만큼 분식회계 등을 묵인한 회계법인이나 회계사에 대한 처벌이 미지근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 동안 회사법인이나 회계사들이 과실에 대해 민사적 또는 형사적으로 응분의 책임을 졌다고 볼 수 없다.
회계사의 경우 우리나라에선 일년만 쉬면 다시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 정설처럼 돼 있다. 미국의 엔론 스캔들에 관련된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이 형사재판을 눈앞에 둔 사실과 좋은 대비가 된다.
회계사들의 투명한 감사는 투명한 경영과 주주를 위한 경영을 정착시키는 기본 요건이다. 이번 판결은 공인회계사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하나의 경종이라고 할 것이다.
현재 증권집단소송법 제정 및 분식회계에 연류된 회계사에게 징역형을 내릴 수 있는 증권거래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어 투명감사를 하지 않는 회계법인이나 회계사는 살아 남을 수 없게 됐다. 투명경영만이 국제화시대를 앞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을 투명경영 촉진을 뒷받침하는 투명감사의 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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