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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스포츠용품 회사인 아디다스 악티엔게젤샤프트(이하 아디다스)는 지난 2007년 6월 특허청에 삼선(三線) 셔츠에 대한 상표등록을 요청했다. 삼선 셔츠는 셔츠의 옆구리에서 허리까지 세 개의 굵은 선을 넣은 상품이었다.
하지만 특허청은 상표등록을 거절했다. 이에 아디다스는 특허심판원에 불복심판을 청구했지만 이마저 기각되자 특허법원에 상표등록 거절결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국내 상표등록실무에서는 위치상표 출원과 등록에 관한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아 아디다스 소송에 대한 법조계 안팎의 관심을 높았다.
위치상표란 특정한 문양은 아니지만 의류 등의 특정 위치에 부착돼 상품의 식별을 가능하게 하는 표장을 말한다.
관련 제도가 없다 보니 그동안 위치상표에 대한 판단은 재판부마다 각기 달랐다. 따라서 아디다스 소송은 30년 가까이 논란이 되고 있는 위치상표 법리에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소송이었다. 아울러 법원이 상표권의 권리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지 판단할 수 있는 소송이기도 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만약 법원이 위치상표 등록 제도가 없다는 이유로 위치상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상표권 소송은 형식 논리에 매몰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반대로 인정해 준다면 앞으로 진행될 다른 상표권 소송에서도 전향적인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일단 1심 역할을 한 특허법원은 아디다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법원은 옆구리에서 허리까지 연결된 세 개의 굵은 선 부분은 독립적인 하나의 식별력 있는 도형이라기보다는 상품을 장식하기 위한 무늬의 하나 정도로 인식될 뿐이어서 식별력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옆구리에서 허리까지 연결된 세 개의 굵은 선을 국내에서 아디다스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해 아디다스의 상표로 널리 알려졌다고 인정하기에도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이번 소송의 중요성을 감안해 대법원장과 대법관 모두가 재판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사건을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012년 말 아디다스가 패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전원합의체는 "상의 옆 부분의 세로 줄무늬는 위치상표에 해당해 식별력을 지닌다"며 "원심은 상표의 식별력 판단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상표법상 상표의 정의 규정에 따르면 '기호·문자·도형 각각 또는 그 결합이 일정한 형상이나 모양을 이루고 이러한 일정한 형상이나 모양이 지정상품의 특정위치에 부착되는 것에 의해 자타상품을 식별하게 되는 표장'인 위치상표도 상표의 한 가지로서 인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상표 출원과 심사 과정에 출원인이 위치상표라는 취지를 밝히는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위치상표를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전원합의체 판단에 따라 표장에 표시된 지정상품 형상 부분의 구체적인 의미를 따져보지 않고 이를 일률적으로 표장의 외형을 이루는 도형이라고 본 기존 대법원 판례는 변경됐다.
당시 판결과 관련해 대법관들은 위치상표를 인정할 경우 특정 위치를 상표권자로 하여금 독점하도록 한다는 일각의 우려를 고려해 심도 있는 토론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관들은 위치상표 등록을 원한다고 모두 등록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식별력 유무를 고려해 판단하기 때문에 위치상표권을 남용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고 아디다스의 손을 들어줬다.
상품의 특정 위치에 부착되는 위치상표의 경우 표장 자체의 식별력이 충분한 경우 등록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취득해야만 비로소 등록받을 수 있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본 것이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30년 넘게 엇갈린 재판부 판단에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셈이었다.
앞서 대법원은 1983년 아디다스 신발의 삼선 무늬 등에 대해 위치상표로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 판결은 이후 또 다른 대법원 판결에 의해 효력을 잃게 된다.
2000년초 대법원이 아디다스 운동복 상의와 하의에 부착된 삼선 무늬에 대해 운동용 유니폼 등의 일반적인 형상을 나타낸 것에 지나지 않아 자타상품의 식별력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형식 논리가 아닌 소비자들이 아디다스 상의 셔츠의 삼선을 실제 아디다스 상품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논리에 따라 아디다스의 손을 들어준 판결은 이후 상표권과 관련한 소송에서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최근 뉴발란스가 자사 운동화의 "N 표장은 식별력 있는 상표권 보호 대상이므로 이와 유사한 표장을 단 운동화를 생산해서는 안된다"며 국내업체 A사를 상대로 낸 상표권 권리범위확인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상표 등록 당시에는 식별력이 없었지만 이후 소비자들이 널리 애용하면서 어떤 상품을 표시하는 것인지 식별력이 생겼다면 이를 기초로 상표의 유사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상표의 식별력은 거래 실태나 수요자 구성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상대적 개념이므로 상표권 등록 시점이 아닌 소송 시점에 소비자들이 어떤 상품을 상징하는지 인식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뉴발란스 판결은 상표 등록 이후 식별력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등록 당시 식별력이 없었다면 상표권을 보호받을 수 없다고 판단해 온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으면서까지 아디다스 삼선 판결과 같이 이론적 개념이 아닌 실제 소비자들의 식별력을 기준으로 뉴발란스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아디다스 삼선 판결과 뉴발란스 판결이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상표를 형식적으로 파악하거나 식별력도 형식논리도 파악하는 한계에서 벗어나 상식에 입각해 판결을 내렸다는 점에서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