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풍년의 역설'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가

배추를 비롯한 채소류 가격이 내림세다. 공급이 많기 때문이다. 주목할 현상은 공급 증가보다 가격 하락폭이 크다는 점이다. 공급은 7%가량 늘었으나 산지 출하 가격은 30% 가까이 떨어졌다. 그렇다고 소비자 가격이 크게 내려간 것도 아니어서 농민만 손해를 보는 구조다. 풍년이 들어 농부가 풍년가를 부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격 폭락에 울상 짓는 '풍년의 역설'이 농가를 옥죄고 있다.


문제는 '농부의 역설(Farmer's Paradox)'이라고도 불리는 '풍년의 역설'이 고착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농산물 생산이 늘면 농가 소득이 떨어지고 반대로 생산이 감소하면 소득이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농가에서 '농사는 투기' '남이나 다른 지역에 흉년이 들고 우리 지역만 풍년 수확을 거둬야 진짜 풍년'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말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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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의 역설이 고착화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농산물 수급의 비탄력성(가격이 변해도 수요가 크게 영향 받지 않는 성질)에 있다. 적정 수요보다 공급이 10% 늘면 가격이 10% 떨어지는 게 아니라 50% 떨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이런 현상에는 농부들의 책임도 크다. 어떤 작물이 좋다고 하면 대박을 노리고 너도나도 파종하는 투기심리를 부인하기 어렵다. 기상 이변으로 장기 기후 예보의 정확성이 떨어졌다는 점도 투기적 파종의 원인으로 꼽힌다.

대안은 두 가지다. 현지 수매의 8%에 불과한 농협의 수매를 늘려 수급조절 능력을 갖추는 동시에 농산물을 1년 이상 장기 보관할 수 있는 프레시 창고를 갖추는 게 대안이다. 둘 다 초기에는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가지만 가격이 안정될 경우 농가는 물론 도시 소비자들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다. 길이 있는데도 실행하지 못한다면 정부는 존재 의미를 잃는다. 언제까지 운에 맡기는 투기형 농사에 한숨지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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