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만 알고 남측에서 제사까지 지내온 동생을 만난 구순이 넘은 누나는 연신 "살아 있어줘 고맙다"며 눈물을 쏟았다. 살아생전에 재회할 수 없다고 믿었던 동생들은 북측 오빠와 언니의 상봉 신청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태평양을 한달음에 건너와 60년 맺힌 한을 풀었다.
남측 가족 357명은 이날 아침 집결지인 속초를 출발해 강원도 고성군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과해 상봉장소인 금강산에 오후1시20분께 도착했다. 이들은 오후3시7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단체상봉'을 통해 북측 혈육 88명을 부둥켜안았다.
북측 신청자 대부분인 82명이 80대의 고령이었고 6명만 70대였다. 남측 최고령자인 이오순(94)씨는 북측의 동생 조원제(83)씨를 만나 "살아 있어줘서 너무 고마워. 제사까지 지냈는데…잊지 않고 연락해줬구나"라며 인사를 했다. 동생은 두 손으로 누나의 얼굴을 매만지고 눈물을 닦아주며 "잘 지냈다"고 담담히 답했다.
열여덟 살에 6·25 때 의용군으로 끌려간 후 소식이 끊겼던 오빠 류근철(81)씨를 만난 정희(69)씨는 "오빠가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여기저기 찾으러다니며 무당에게 점도 봤다"며 "어떤 무당은 죽었다고, 또 어떤 무당은 살았다고 한 뒤로 찾는 걸 포기했다"고 말했다.
정희씨는 오빠의 손을 꼭 잡고 "우리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적이 일어났구나' 생각했다"면서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가 않는다"며 감격해 했다.
형제자매와 친척 간 만남이 많은 2차 상봉에서 유일하게 부녀지정을 나눈 남측의 딸 남궁봉자(60)씨도 아버지 남궁렬씨가 두번이나 돌아가신 줄만 알고 낙담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6·25전쟁 중 실종돼 돌아가신 줄 알았고 생사라도 확인하려 이산 상봉 신청을 했는데 계속 안 돼 결국 돌아가셨나 보다 했다"며 어머니가 5년 전 사망한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하며 가슴을 쳤다.
미국에 거주하며 남편을 따라 성까지 바꾼 김경숙(81)씨는 북쪽의 오빠 전영의(84)씨를 만나 "죽은 줄만 알고 고향도 등졌는데 오빠가 나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고맙습니다' 하며 전화를 붙잡고 울었다"며 또 울었다.
경숙씨의 딸도 엄마가 평생 만나기를 소원한 삼촌을 만나 뜨거워진 눈시울을 훔쳤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최정수씨도 전쟁통에 헤어진 북측 언니 정애(79)씨를 만나기 위해 바다 건너 금강산을 찾아 만찬 내내 언니의 식사를 거들었다. 죽은 줄 알고 '영혼결혼식'까지 시켜줬다는 언니 홍석순(80)씨를 만나러 온 남측의 동생 명자(65)씨는 네 살 때 헤어진 언니를 한눈에 알아보며 달려가 얼싸안았다.
남북의 가족들은 상봉 이틀째인 24일 금강산호텔에서 '개별상봉'과 '공동중식',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단체상봉'을 이어가고 마지막 날인 25일 오전9시 금강산호텔에서 '작별상봉'을 끝으로 2박3일간 6차례, 11시간에 걸친 만남을 마감한다.
/금강산=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