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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자본이 쌓여야 임금 올라 '부 집중 가속화' 주장 잇단 반박
누진세로 빈부격차 해소하기보다 소비세 인상·사회안전망 강화를
'21세기 자본론' 피케티
소득 불평등·기술격차 등 맞물려 자본주의 사회선 '부 집중' 불가피
재벌이 정치 캠페인에 기부하면 소비세 어떻게 부과하나 비꼬기도
올해 전미경제학회(AEA) 연차총회에서 최대 하이라이트는 '21세기 자본론'으로 록스타 경제학자로 떠오른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와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 등 주류 경제학계 거물들 간의 격돌이었다.
3일(현지시간) 오전8시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셰러턴호텔에서 열린 이번 세션 토론장은 통로까지 청중이 가득 찼고 일부는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21세기 자본'을 놓고 언론들이나 석학들이 대리전을 벌인 적은 있었지만 직접 맞붙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에서 주류 학자 3명은 피케티 한 사람을 불러놓고 맹폭을 가했다. 미 경제학계 거물인 맨큐 교수는 '맞다,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을 앞선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Yes, r>g. So what)'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주제발표를 통해 "피케티의 결론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인 자본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포문을 열었다.
'맨큐의 경제학'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맨큐 교수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 속도를 앞지르며 부의 집중과 대물림이 가속화했다는 피케티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일단 그는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높아야 자본이 축적되면서 생산성과 노동자 임금을 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케티의 부의 대물림 주장도 적극 비판했다.
맨큐 교수는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높더라도 소비·자손·세금 등의 요인 때문에 부유층 집안의 자산은 매년 줄어든다"며 "이 같은 점을 감안할 때 경제가 매년 3% 정도 성장하는 미국의 경우 자본수익률이 연평균 7%는 돼야 성장률을 초과할 수 있는데 피케티의 연구에서 자본수익률은 4~5%로 분석됐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시나리오"라고 공격했다.
그는 빈부격차 해소 방안으로 피케티가 고소득자 누진세, 글로벌 부유세 등을 제시한 것과 달리 소비세율 인상, 사회안전망 강화 등을 제시했다. 그는 피케티의 부유세 도입 주장에 대해 "부의 불평등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당신은 과연 잘살지만 불평등한 사회와 모두가 못살면서 더 평등한 사회 가운데 어느 곳에 살고 싶은가"라고 비꼬았다.
데이비드 웨일 브라운대 교수도 피케티가 눈에 보이는 지표만 분석하고 노동시장의 변화를 간과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와 달리 교육·훈련을 통한 숙련 기술자가 될 기회가 제공된다"며 "아동 노동이 사라지고 노동참가율이 떨어지는데다 은퇴 후에도 연금이나 사회보장이 되는 점을 감안하면 부의 이동이 빈번해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앨런 아우어바흐 UC버클리 교수는 "글로벌 부유세를 도입하려면 글로벌 정부가 필요하다"며 피케티의 해법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맨 마지막에 발표자로 나선 피케티 교수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는 "자본수익률이 성장률을 앞서는 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유일한 이유라고 말한 적이 없다"며 맨큐 교수에게 역공을 가했다. 가령 미국의 경우 1980~2010년 자산 상위 계층의 자산이 크게 증가한 것은 대부분 임금소득 불평등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또 대학교 등록금 급증, 공공투자 부족, 세계화로 인한 기술 격차 심화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높으면 장기적으로 부가 집중됐을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가령 자본수익률이 5%이고 성장률이 1%일 경우 부유층은 자산의 20%만 투자해도 재산이 국가경제가 성장한 속도만큼 늘어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자본수익률과 성장률 차이가 1%포인트만 늘어도 장기적으로 전체에서 부유층이 차지하는 자산 비중은 10%포인트나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자본수익률이 성장률을 앞서는 자본주의 발전과정 자체가 부의 불평등이 심화한 이유"라고 못 박았다.
그는 자산보유세 증세가 간단한 반면 주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소비세 인상 주장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라고 반박했다. 피케티 교수는 "부자들은 옷·음식 등의 소비가 아닌 사회적 영향력 확대에 돈을 쓴다"며 "미국의 석유 재벌인 코흐 형제가 정치 캠페인에 기부하면 소비세를 어떻게 부과한다는 얘기냐"고 비꼬았다.
이날 사회를 맡은 맨큐 교수가 피케티 교수를 '떠오르는 슈퍼 스타'라고 소개했고 청중은 피케티에 열광했다. 젊은 층이 많아서인지 피케티의 반박이 이어질 때마다 박수가 터져나왔다. 맨큐 교수가 '21세기 자본'이 "정치적 철학을 담고 있다"고 비판하자 한 청중이 "당신도 정치적이지 않느냐"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는 주류 경제학자들이 피케티 열풍을 잠재우려면 빈부격차가 완화되든지, 칼날을 더 가다듬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