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회장들의 쓴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며칠 새 입이라도 맞춘 듯 가계대출 규제에서부터 증시안정기금 조성, 우리금융 민영화 무산 등, 금융 당국에 대해 사사건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뜩이나 시장에 대한 당국의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소리가 나오는 터지만 당국과 지주사 회장들이 벌이는 '파워 게임'이 시장의 불안을 도리어 증폭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은행연합회장부터 지주 회장까지 일제히 쓴소리=포문은 신동규 은행연합회장이 열었다. 당국의 가계대출 규제 방안을 놓고서다. 신 회장은 지난 23일 "(가계대출 증가액 가이드라인인) 0.6%가 만고강산의 진리냐"며 불편한 심경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하루 뒤에는 금융지주 회장들이 가세했다. 완곡한 표현이었지만 '비판'에 방점이 찍혔다. 한동우 신한지주 회장은 "(당국이 가계대책과 관련해) 여러 수단이 있겠지만 가능하면 은행이 자율적으로 해서 스무스(부드럽게)하게 정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승유 하나지주 회장 역시 "직접적으로 대출 규제를 하지 말고 대손충당금을 달리하는 식의 간접적인 규제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금융 매각이 무산에 대해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민영화가 무산된 것은 (정부의 민영화 추진내용이) 시장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방안이었기 때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당국이 검토하고 있는 증시안정기금 조성도 대상이었다. 어윤대 KB지주 회장은 "(증시안정기금 조성은)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1∼2년 후에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책 놓고 파워게임으로 치닫나=금융 당국과 금융지주 회장들의 마찰은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지주 회장들은 16일 김석동 금융위원장, 권혁세 금감원장과의 회동에서도 고배당을 놓고 설전이 오갔다. 권 원장이 "오는 2013년부터 바젤Ⅲ가 실시되면 자기자본비율을 10.5% 이상으로 맞춰야 하는데 은행은 걱정 없지만 금융지주회사는 맞추지 못하는 곳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 뒤 "배당보다는 자기자본 확충에 신경 써야 할 때"라고 밝혔다. 이에 회장들이 발끈했다. 어 회장은 "외국인 투자가들이 등을 돌릴 수 있다"고 말했고 다른 회장도 "우리만 급하게 바젤Ⅲ를 적용해야 하느냐. 외국 은행들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 좋다"고 비판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회장들은 당국이 금융불안을 과도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불만도 토했다. 한 지주 회장은 "은행들이 충분히 달러를 확보해놓았는데도 2008년 때처럼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식으로 발언을 하고 있다. 당국이 되레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감독 당국이 추가로 내놓을 가계대출 규제 방안이나 이른바 '약탈금리' 관련 대책의 강도를 조절하기 위한 파워게임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금융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추석 전후 당국이 관련 대책을 내놓을 텐데 규제의 강도가 세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을 하고 있다"면서 "은행 자율 등에 목소리를 내는 것도 강도를 낮추기 위함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당국의 발언을 보면 은행을 마치 서민들의 주머니를 터는 곳쯤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