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권 주자인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2주 전 자신의 텃밭인 미시간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의외로 고전했다. 롬니의 지지율은 41%로 2위 릭 샌토럼 전 펜실베이니아 상원 의원과 불과 3%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미시간이 자신의 고향이고 부친이 주지사를 역임한 안마당이니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롬니가 고향에서 고전을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샌토럼의 돌풍만은 아니다. 금융위기 때 GM 등 '빅3'구제금융을 반대한 전력이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언론 기고를 통해 파산시켜야 한다고 했으니 자동차로 먹고 사는 지역 민심이 오죽했겠는가.
시계추를 되돌려 보자. 지난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붕괴의 충격으로 빅3가 파산 위기에 처하자 구제금융을 놓고 일대 논쟁이 붙었다. 롬니의 파산론(Let Detroit go bankrupt)은 이때 나왔다. 당시 만난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의 경제학자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가 던진 말은 지금도 생생하다. 빅3를 멸종 위기에 처한 공룡에 비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이 뒷받침되면 모를까, 아마도 10~15년쯤 지나면 미국에서 더 이상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할 수 있다." 대마불사에 익숙한 한국 기자로서는 충격이었다.
그의 예측을 검증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현 시점에서 본다면 반쯤은 맞지 않나 싶다. 조지 부시 행정부가 거부한 자동차 산업 구제는 이듬해 출범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개입 정책에 의해 착착 실행되니 말이다. GM에 투입된 공적 자금은 자그마치 500억달러에 달한다. 이중 300억달러는 월가 구제금융 자금을 전용했다. 시쳇말로 꼼수다. 이뿐이랴. GM의 할부금융회사에도 170억달러의 혈세가 뿌려졌다. 거버먼트 모터스 (Government Motors), 오바마 모터스(Obama Motors)라는 꼬리표는 그래서 달린 거다. 롬니의 주장대로 구제하지 않았던들 GM이 지난해 103년 역사상 최대 실적을 낼 수 있었을까. GM의 회생은 오바마 행정부가 보호주의라는 우산을 받쳐 준 결과물이라는 평가는 결코 과하지 않다.
11월 대선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은 GM의 부활을 대선 캠페인에 연계하고 있다. 롬니가 공화당의 주자라면 더욱 좋다. GM의 재기는 구제금융을 정당화하고 롬니의 파산주장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오바마가 올 국정 연설에서 GM의 세계 자동차 판매 1위 탈환을 언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바마는 재임기간 중 수출을 2배로 늘리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법인세를 7%포인트 내리고 해외에서 돌아오는 기업에 이전비용의 20%를 돌려준다는 세제개편안은 후속 조치다. 경쟁하듯 복지 포퓰리즘을 쏟아내는 우리 정치권과 비교해 마냥 부러워할 일만도 아니다.
수출 증대의 핵심은 안으로는 법인세 인하요, 밖으로는 공정무역의 집행이다. 말이 좋아 공정무역이지 무역질서는 힘의 논리에 좌우된다. 미국이 휘두른 힘의 횡포가 어디 한두 번인가. 1985년 플라자합의로 일본 경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빌 클린턴 행정부는 집권 첫해에 슈퍼 301조를 부활시켜 8년 동안 3번이나 발동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가 불공정 무역관행에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것이나 각국의 불공정 행위를 감시할 범 부처 무역집행센터(ITEC) 창설하기로 한 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중국만 표적이 아니다.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한 경제동맹국인데 뒤통수를 때리겠냐는 생각은 순진하다. 오마바인들 GM의 1위 탈환이 경쟁력 1위가 아님을 모를 턱이 없다. 미국은 디트로이트의 부활에 어떤 희생도 치를 수 있을 게다. 미제조업 부흥, 좁게는 GM의 재기를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다는 말은 50여년이 흘러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