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6월1일] 컴스톡 광맥


1859년 6월1일, 미국 네바다 준주 서부 데이비드산 중턱. 헨리 컴스탁이 검은 빛의 모래를 한 줌 찾아냈다. 모래를 시냇물에 씻어내자 깨알만한 물체가 반짝였다. 금(金)이었다. 지표면 바로 거대한 검은 암석층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은(銀)을 품고 있었다. 발견 한 달 만에 컴스탁은 은괴를 만들어낼 정도로 많은 은을 캐냈다. 지역은 곧 ‘컴스탁 광맥(Comstock Lode)’으로 불렸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몰려든 사람들로 산 기슭도 인구 3만의 도시로 변해 버지니아 시티라는 이름을 얻었다. 발견 이후 전성기인 1878년까지 20년간 컴스탁 광맥이 토해낸 은과 금의 가치는 약 4억 달러. 요즘 가치(비숙련공 임금 상승률 기준)로는 566억 달러가 넘는 금액이다. 더 이상 파낼 금과 은이 없어 1898년 폐쇄될 때까지 컴스탁 광맥은 갱도 깊이(1,000미터), 산출량 등 모든 기록을 깨뜨렸다. 갱도 붕괴를 막기 위한 사각형 목재 안전판과 물을 빼내기 위해 거대한 뚫은 지하수로로 컴스탁광산을 현대식 광산의 시초로 꼽힌다. 은본위제도 채택을 검토할 만큼 막대한 은을 쏟아낸 컴스탁에서 가장 짭짤한 수입을 올린 사람들은 광산업자가 아니라 변호사. 소유권을 둘러싼 끝 없는 분쟁과 소송으로 전체 산출량의 10%가 변호사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컴스탁 광맥은 서부를 향한 철도 건설도 촉진시켰다. 변경이던 서부가 성장 원동력으로 자리잡은 것도 캘리포니아 금광(1849년)과 컴스탁 광맥 발견 이후부터다. 조직적이고 대규모인 산업별 노동조합도 컴스탁 광산에서 처음 등장했다. 백인 숙련공 위주의 배타적 노조라는 미국 노동운동의 특징도 중국인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것으로 우려한 백인광부들의 컴스탁 노조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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