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기고] 시장개박, 속도조절이 문제다

金道嚥(산업연구원 경제자유센터 연구위원)우리 나라에서는 「시장개방」이란 소리만 나오면 모두가 한결같이 신경과민성 반응을 한다. 시장을 개방하면 일단 우리 나라가 손해보는 것으로 치고 그 다음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이 있게 논의하려 들지를 않는다. 때로는 개방의 당위성 혹은 불가피성을 주장하려면 우리 경제를 발가벗기려 드는「준(準) 매국노」쯤으로 취급될 각오를 해야 한다. 왜 그럴까? 개방은 우리 경제를 어떻게 나쁘게 만든다는 것일까? 흔히 주장되듯이 개방이 되면 우리 산업이 와르르 무너지기 때문일까? 무역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일찌감치 다짐한 나라에서 아직까지도 시장개방의 이익은 결국 해외에 물건을 팔아 외화를 벌어들이고 그 외화를 가지고 우리 경제에 필요한 외국물품을 값싸게 구입하는 데서 얻어진다는 원론적인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터이건만, 도대체 수입은 하지 않고 수출만 하는 나라가 무슨 이익을 얻을 것인지 상상해 보라. 과거 중상주의 시절에는 수출해서 벌어들인 금화와 은화를 국고에 재어 놓는 것이 이익이라 여기고 앞다투어 수입을 금지하려 했었다. 실은 이때의 이익이란 개념은 국가 혹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군주 혹은 영주 개인을 위한 것이었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번 돈으로 국민들이 질 좋고 값싼 물건을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역이 가져다주는 궁극적인 이익이라는 것은 인정해야 하는 게 아닌지? 한 발 물러나서 소비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생산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수출해서 번 돈을 가지고 설비투자를 하거나 기술개발 투자를 하는 것이 즉, 그 돈을 유용하게 쓰는 것이 그 돈을 금고에 넣어 두는 것보다는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투자를 위해 필요한 수입을 왜 막아야 하는가? 다시 한 발 물러나 수입으로 인한 치열한 경쟁 때문에 우리 산업이 무너진다는 주장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개방은 때로는 경쟁을 촉진시켜 오히려 우리 나라 산업의 체질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보호 속에 안주해 있던 산업 치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얻은 산업이 어디 있는가? 경쟁력이 없는 산업을 영원히 국제사회에서 격리시킨 채 국민 모두가 보호해 주기로 결정한다면 몰라도, 언젠가 경쟁력을 갖추게 하여 국제경쟁에 내놓으려 한다면, 일찍 세찬 경쟁에 나서게 해야 경쟁력이 더 튼튼하게 더 빨리 갖추어질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나라의 경험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수출 효자산업이라는 산업들은 모두 일찍감치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면서 오늘의 실력을 쌓아 왔다. 보호 받은 산업일수록 경쟁력을 쌓기는 커녕 갈수록 덩치만 키우면서 점점 더 강도 높은 보호를 요구하는 로비단체로만 커져 버린 경우가 허다함을 우리는 보아 왔다. 시장개방과 관련하여 우리 나라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불가사의가 있다. 선진국 기업들의 우수한 경영 기법을 도입해야 하고, 선진국 제품 및 기술의 우수성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다가도 그렇게 우수한 선진국 기업들이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 문제 많은(?) 우리 재벌기업들과 경쟁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그래도 우리 나라 기업이니까 보호해야 한다는 식으로 『안으로 굽는 팔』들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개방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보이는 것이 비단 우리 나라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 선진국들도 매한가지라는 점이다. 지난 12월초의 WTO 시애틀 각료회의가 반쪽의 결론만 내리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시민단체들이 나섰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비정부기구(NGO)의 승리임은 분명하지만 시민단체의 승리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때 시애틀을 혼란에 빠지게 한 NGO의 주력은 미국의 철강 및 자동차 노조였음을 감안한다면, 이들은 일반 시민이라기보다는 특정산업의 보호를 위한 소수의 이익집단이었던 것이다. 결국 세계적으로 자유무역의 선봉장 구실을 하는 미국 정부도 이러한 이익집단의 저항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개방과 관련하여 아직 국제적으 합의되지 않은 분야도 있다. 예를 들면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와 「환경과 전통 문화의 보호」라는 정책 목표가 상호 모순된다는 주장과 같은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단지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국내의 경제활동에 국한하더라도 그것이 지나치게 급속히 그리고 무분별하게 이루어질 때 우리는 같은 문제에 봉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문제가 시장개방과 연계되어 나타나면 더 큰 반항을 일으키는 것이다.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농업의 사양화를 다루듯이, 농업과 관련한 시장개방에 문제도 농업이라는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시각에서보다는, 환경과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보호한다는 시각에서 접근하여 결국 개방의 속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대처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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