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역외펀드 전면조사 실태·문제점

관리소홀 틈타 국내주가 쥐락펴락금융감독원의 역외펀드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크게 두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말로만 무성했던 역외펀드를 악용한 시세조종 혐의의 단서가 처음 포착됐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금감원의 일부 기업에 대한 검찰수사 의뢰가 일과성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지속된다는 점이다. 현재 5~6개 기업이 금감원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은 조사를 진행시키는 한편 불법ㆍ탈법적인 운용을 차단하기 위한 근원적인 대책도 강구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역외펀드를 통한 시세조종이 개인투자자가 대부분인 코스닥시장에서 성행한다는 점에서 개인투자자 보호차원에서도 위규 사실을 철저히 가려낼 것"이라고 말했다. 역외펀드는 그동안 국내기업들이 돈을 해외에 빼돌리는 자본도피수단으로 주로 이용돼 왔다. 코스닥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외국인투자가 크게 늘어난 98년 중반 이후에는 국내 증시 교란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역외펀드가 시세조종을 위해 설치한 덫을 '외자유치라는 호재'로만 믿고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이 손해을 입은 사례도 허다하다. ◇허술한 감독 및 관리 국내기업들이 역외펀드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역외펀드 설립이 매우 쉽기 때문이다. 버뮤다ㆍ라부안ㆍ바하마 등 조세회피지역에 단돈 1달러만 갖고 설립신고만 내면 된다. 심지어 1센트짜리 펀드도 있다. 역외펀드 자체가 페이퍼컴퍼니인 만큼 등록만 해놓는 것이다. 그런 다음 홍콩 등 제3국의 펀드매니저와 짜고 자기 입맛에 맞게 운용하면 된다. 그러나 감독당국은 국내기업이 운영하는 역외펀드의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역외펀드 설립 또는 투자에 대해서는 한국은행에 신고하고 분기마다 자산운용보고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해야 한다. 비교적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관리가 그런대로 이뤄지고 있으나 일반 기업은 한마디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기업들이 해외에 세우거나 투자하는 역외펀드는 신고대상이긴 하나 자발적으로 보고하지 않으면 파악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에 악용 이런 점을 이용해 일부 코스닥등록기업은 직접 역외펀드를 운영하면서 자사주나 다른 기업의 주식을 사고 팔아 주가를 조작하고 있다. P사와 H사, C사 등은 역외펀드에 투자한 뒤 이들 기업이 투자한 창업투자회사의 전문 딜러를 통해 자사나 타사의 주가를 관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신용금고의 출자자 상호대출처럼 역외펀드를 이용해 상대방 기업의 주가를 교차로 관리해주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번에 검찰에 수사의뢰된 바른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바른손은 지난해 5월까지 화의상태였던 문구팬시업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런 회사를 인수해 개발(A&D)한다고 나선 곳이 투자회사인 M사다. M사는 지난해 6월 바른손 지분 73.6%(78만5,800주)를 사들여 1대주주가 된 후 말레이시아의 역외펀드인 코르베타ㆍ밸류이슈어스 2개 펀드에 각각 보통주 15만1,475주를 넘겼다. 말레이시아의 2개 펀드는 지난해 7월부터 국내시장에서 100주, 200주등 소규모 단위로 수시로 바른손 주식을 사고 팔았다. 금감원은 이 과정에서의 시세조종 혐의를 포착하고 2개 펀드 외에 M사 관계자 등들도 내부자 정보이용 및 시세조종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외자유치로 포장하는 수단으로 전락 역외펀드가 단지 시세조종에만 악용되지 않는다. 허위 외자유치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라는 것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내 기업이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한 후 이를 제3자인 해외금융기관을 통해 자기가 운영하는 역외펀드가 인수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자기 돈으로 자기 지분을 인수하게 돼 기업으로서는 자본확충과 같은 외자유치 효과가 전혀 없지만 투자자들에게는 '외자유치'라는 대형 호재로 비춰져 주가가 상승하게 된다.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 즉 외자로 포장돼 있지만 실제로는 내국인 자금이 주가 띄우기에 악용되는 것이다. ◇역외펀드 설립 공시 의무화해야 리타워텍 사건에서 여실히 증명됐듯이 '해외 선진 금융기법'을 내세운 이 같은 행위는 결국 국내 투자자들의 호주머니 돈을 털어 가버리는 사기행위에 다름 아니다. 역외펀드를 이용해 쉽게 돈 버는 사례가 많아질수록 기술개발과 시장개척에 힘쓰는 기업인들의 경영의지도 퇴색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역외펀드 운영과 관련한 상장ㆍ등록기업들의 공시를 의무화하고 위반시 엄벌에 처하는 제도적 장치의 도입이 요구되고 있다. 역외펀드 운영실태에 대한 보고기준을 새로 만들고 해외법인과의 연계 재무제표 작성 의무화도 모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규진기자 김성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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