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에서 얼른 떠오르는 것은 멋진 로고다. 하나은행을 상징하는 'ㅎ'을 사람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인데 그것도 보통 사람이 아니라 춤을 추는 사람이다. 두다리를 쭉 뻗어 점프를 하다 왼쪽다리를 살짝 구부린 발레리나를 연상하게 한다.
전통ㆍ세련미 조화된 로고
기업의 로고가 거의 영어표기 일색이고 또 그래야 국제화가 된 것처럼 여기는 세태에 비길 때 하나은행의 로고는 전통미와 세련미를 함께 갖췄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지난 93년 7월 유러머니지(誌)가 하나은행을 한국최우수은행으로 선정하면서 '서구의 금융기법을 동양적인 경영스타일에 적절히 접목시킨 독특한 경영조직' 이라고 선정이유를 밝힌 대목이 상당히 그럴 듯하다.
이 로고는 하나은행의 윤병철 전행장(현 우리금융그룹회장) 때 만들어진 것인데 윤 행장이 93년부터 국립발레단 후원회장을 맡고 94년에는 발레작품 '해적'에 몸소 출연할 정도로 발레에 대한 조예와 열정이 남다른 사람인 점을 염두한다면 그런 로고의 탄생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발레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인간이 동물과 달리 직립(直立)하는 것은 상승욕구의 탓"이라며 "서서 뛰고 날아다니는 발레는 인간의 상승욕구를 가장 잘 표현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의 발레 사랑은 기업메세나운동에 맥이 닿아 있다. "자유로운 기업경영에는 문화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문화 애호적인 기업가정신이다.
이런 하나은행이 서울은행을 인수해 자산규모 3위의 대형은행으로 태어날 전망이다. 지난 71년 투자금융사(단자회사)로 출발해서 91년 은행으로 전환한지 11년만에 국민은행ㆍ우리금융에 이어 3위의 은행으로 일어선 것이다.
2위인 우리금융이 공적자금 투입 은행들의 집합체인 점을 감안하면 하나은행의 위상은 자산순위 이상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은행은 단자사 시절 20년을 포함, 31년째 흑자행진을 지속해오고 있는 은행이다.
하나은행의 그같은 건전경영이 금융시장의 붕괴로 야기된 IMF관리체제에서 진가를 발휘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환란의 패잔병인 충청은행과 보람은행을 98년ㆍ 99년에 각각 인수했다.
국제적인 보험그룹인 알리안츠ㆍ프랑스생명 등과 동업관계를 맺어 방카슈랑스 체제를 갖춘 데 이어 증권ㆍ투신 서비스도 제공하는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했다.
서울은행 매각문제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매각소위에서 하나은행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공자위 본회의의 최종결정을 남겨놓고 있다.
하나은행과 마지막까지 서울은행 인수 경합을 벌였던 미국계 펀드 론스타가 값을 더 내겠다고 수정제안서를 냈으나 하나은행을 제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국내 은행이 미국계 투자펀드를 제쳤다는 바로 그점이 서울은행 매각협상에서 가장 특기할 사항이다. 론스타는 가격조건도 비슷했을 뿐 아니라 대금지급 조건은 현찰지급으로 하나은행의 주식지급 조건 보다 오히려 나은 편이었다.
17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들어간 제일은행을 미국계 투자 펀드인 뉴브리지 캐피털에 5,000억원에 허겁지겁 팔아 넘긴 상황에 비기면 천양지차다. 그럼에도 뉴브리지 캐피털의 제일은행 경영실적은 평균 이하다.
문화주의 도약정신이 저력
정부가 서울은행 매각의 명분을 '국내금융산업의 장기적인 발전'에서 찾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부실기업을 싸게 산 뒤 적당히 수선해서 되파는 것이 목적인 외국계 펀드 보다는 탄탄한 경영능력이 입증된 토종은행에 믿음이 가는 것이다.
하나은행의 이 같은 저력은 멋진 로고 속에 있는 것 같다. 그 로고 속에는 'ㅎ'자가 상징하는 우리 것에 대한 사랑, 'ㅎ'을 발레의 도약하는 몸짓으로 형상화한 미적감각, 기업의 힘을 예술의 힘에서 찾는 문화 애호 정신이 함축돼 있다.
로고가 멋진 기업의 승승장구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다.
논설위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