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벼랑에 다시 선 팬택


전세금 4,0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사장은 겨우 직장생활 4년을 겨우 마친 평사원 출신에다 직원은 달랑 6명. 누가 봐도 흔히 널려진 그렇고 그런 회사였다. 하지만 한번 걸음마를 떼자 무섭게 달렸다. 처음엔 무선호출기(삐삐)가 50%가 넘는 성장세를 이끌었고 나중엔 휴대폰이 바통을 이어받아 매출 3조원이 넘는 대기업으로 키웠다. 벤처업계에선 신화와 동의어처럼 불린 것도 이때쯤이다. 지금은 희미해진 팬택의 옛이야기다.


△팬택의 성장에는 최고경영자의 역할이 컸다. 박병엽 전 부회장은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면서도 다른 이들이 흔히 갖는 회장 직함에 매달리지 않았다. 국내 최고 기업으로 키우기 전까지는 '회장'직을 갖지 않겠다는 그 자신과의 약속 때문이다. 누구나 금방 형 동생으로 만드는 강력한 친화력도, 식사를 나누던 기자가 타사 휴대폰을 사용하면 빼앗아버리고 자사 제품으로 바꿔줄 만큼 유달랐던 자부심도 회사에 약이 됐다. 팬택 하면 박 전 부회장을 떠올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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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에 이 회사는 쓰려져도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가 됐다. 1991년 창업 이후 승승장구하던 회사가 1997년 외환위기로 주춤했을 땐 휴대폰이라는 승부수로 난관을 극복해냈다. 경영난으로 2007년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을 때는 모든 직원들은 휴일도 잊고 땀방울을 흘렸다. '월화수목금금금'의 노력으로 17분기 연속 흑자를 일구는 기적도 이뤄냈다. 2011년의 워크아웃 졸업은 이렇게 패자부활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팬택이 2년2개월 만에 다시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상황은 전보다 더 안 좋다. 스마트폰 시장을 둘러싼 공룡들의 전투가 격렬해졌지만 대응할 수단은 마땅치 않다. 지난해 박 전 부회장이 떠나면서 강력한 리더십도 기대하기 힘들어졌고 해외사업은 아예 포기한 상태다. 다행히 품질과 기술력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이다. 이번에도 패자부활의 기적이 이뤄질 수 있을지…. 위기를 딛고 일어서는 벤처신화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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