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에서 대리로 근무하던 K씨는 “조만간 직장을 옮기기 위해 은행을 떠날 결심을 했다”며 지난해 말 희망퇴직 신청서를 냈다. 은행인들 사이에 정년까지 직장을 다니기보다는 어느 시점에 회사를 그만두고 제2의 직장생활을 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희망퇴직ㆍ명예퇴직은 회사에서 잘려나가는 것으로 인식됐으나 최근 들어 적절한 시기에 얼마간의 프리미엄을 받고 회사를 떠나는 이른바 ‘준비된 퇴직’의 바람이 일고 있는 것이다. 3일 신한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실시한 희망퇴직에 800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려 이중 612명이 최종 퇴직한 것으로 마무리됐다. 신한은행은 당초 희망퇴직자 수를 200명 정도로 계획했지만 의외로 많은 인원이 신청을 하자 160여명에게 서류를 반려해 최종 퇴직자를 선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퇴직자 중 5급 이하 대리 및 행원이 294명으로 전체 퇴직자 중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동안 은행권의 명예퇴직자들이 ‘자의(自意)보다는 타의(他意)’로 회사를 떠났던 상황에서 은행이 ‘유능한 일꾼’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오히려 신청을 반려하는 역전된 모습을 보여줘 관심을 끌고 있다. 부서장급 이상에선 150명, 4급 이상 168명, 5급 이하 대리 및 행원 294명이다. 또 전체 퇴직자 중 남성 직원이 307명, 여성 직원은 301명이지만 5급 이하 직원 중에서는 여성 퇴직자가 252명으로 젊은 직원 중 여성 퇴직자의 숫자가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회사 측에서는 영업현장에서 일하는 젊은 직원들의 신청이 몰리면서 업무 차질을 우려해 직원들이 회사에 남도록 설득하는 작업을 벌였었다. 이를 통해 180여명이 퇴직의 뜻을 접고 회사에 남기로 결정했다. 이번에 신한은행의 희망퇴직제도에 신청자가 몰렸던 것은 퇴직자에 대해 3년 가까이 월평균 임금을 지급하는 등 조건이 좋았던 점도 있지만 최근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이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던 ‘준비된’ 젊은 직원들이 희망퇴직제도를 좋은 이직기회로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 은행원들이 안정적으로 근속할 수 있는 조건을 은행 근무의 장점으로 내세웠지만 최근에는 승진 가능성과 업무 성격 등을 철저히 따져 언제든 이직할 준비를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노조 관계자는 “은행의 업무 강도가 예전보다 높아지면서 9시 이전에 퇴근하기가 어렵다”며 “육아에 고충을 느꼈던 직원들이 대거 신청했던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40세 이상의 직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실시한 국민은행의 준정년제에서는 64명만이 지원해 젊은 직원들까지 대상으로 했던 신한은행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신한은행은 희망퇴직자 중 정년까지 남은 기간이 24개월 이내인 직원은 정년까지 월 평균 임금을 일시 지급하고 정년이 24개월 이상 남았을 경우 26∼30개월치 임금을 지급하는 조건을 내걸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