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압승 소식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긴장상태에 접어들었다. 유로화 가치는 11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하며 달러화와 1대1에 더욱 가까워졌다. 미국 등 주요국 국채와 달러화 등 이른바 안전자산으로의 글로벌 투자자금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26일 그리스 총선에서 시리자의 압승 소식이 전해진 도쿄외환시장에서 달러·유로 환율은 유로당 1.1098달러까지 추락했다. 이는 지난 2003년 9월 이후 최저치다. 유로화 가치는 달러화 대비 올 들어 23일까지 7.8% 하락하며 16개 주요 통화 가운데 달러화 대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지난주 유럽중앙은행(ECB)의 전면적 양적완화(QE) 발표 이후 유로화 약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시리자의 압승은 통화가치 하락을 더욱 부채질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리자가 유럽연합(EU)의 긴축 강요에 반대하고 부채탕감 협상에 나서겠다고 공언한 만큼 2012년 재정위기 때 구제금융을 제공한 '트로이카'와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유로 시장의 위험자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설사 그리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서 탈퇴하는 '그렉시트(Grexit)'의 발생 여부와 별개로 시리자의 승리는 스페인·이탈리아 등 다른 유로존 내 극좌 혹은 극우파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전 핌코 대표는 블룸버그 기고에서 "시리자의 선전은 기존 정치권력에 실망한 유럽 내 유권자들의 정치적 변화를 나타내는 지표"라며 "이런 현상은 취약국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환시장에서는 유로화 가치가 달러화에 비해 추가로 10% 더 하락한 패리티(1대1 환율) 수준에서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지만 일부에서는 이를 하향 돌파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즈호은행은 이날 "2월28일에 종료되는 EU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연장될지에 관심이 모아지면서 그리스 국채와 유로화 가치 하락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는 1유로당 0.8달러까지 갈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레그 깁스 RBS 선임 외환전략가는 "그리스 총선 이후 향후 몇 달간 긴축과 관련해 아무런 소득 없는 논쟁이 이어질 것"이라며 "유로존의 인플레이션 조짐을 확인할 수 있는 확실한 경제지표가 나오지 않는 한 유로화 가치는 지속적으로 추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아시아 증시는 약세를 보였다. 일본 증시는 수출 증가 소식에도 불구하고 닛케이225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25% 하락한 1만7,468.52로 장을 마쳤다. 토픽스지수는 0.08% 떨어진 1,402.08을 기록했다. 반면 미국과 일본 국채 등 초우량 자산은 강세를 이어갔다. 미국 10년물 국채는 0.04%포인트 하락(가격 강세)한 1.76%를 나타냈으며 일본 국채도 0.005%포인트 떨어진 0.22%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