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시대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국내 유일의 주요 부존 자원인 석탄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자원안보’ 측면에서 볼 때 국익에 큰 손실이 됩니다.” 석탄과 함께 40년을 산 김지엽(65) 대한석탄공사 사장. 지난 60ㆍ70년대 석탄산업의 전성기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다 90년대 들어 사양산업이라는 굴레를 쓰며 추락한 ‘석탄’에 대한 김 사장의 열정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그 자신은 90년대 중반 회사를 떠났지만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석탄’을 떠난 적은 없다. 석탄산업 정상화에 총대를 멘 김 사장이 ‘석탄은 꺼지지 않았다’며 차근차근 그 중요성을 설명했다. 김 사장은 “석유ㆍ가스 모두 수입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가면 석탄(무연탄)마저 수입해야 할 처지가 된다”며 “수입할 수야 있겠지만 우리가 생산할 수 있는 자원마저 수입하는 건 아예 ‘자원안보’는 챙기지 않겠다는 얘기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화려했던 석탄의 과거는 이제 온데간데없다. 잘나갔던 80년대 중ㆍ후반까지 탄광 수는 350여개에 달했고 연탄공장은 1,000개가 넘었다. 대성ㆍ삼천리ㆍ동원산업ㆍ강원산업 등 굴지의 재벌도 여럿 배출했다. 김 사장은 “석탄을 만지면 돈을 벌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탄광 수는 8개로 줄었고 가동 중인 연탄공장도 지금은 50여개에 불과하다. 석탄으로 돈을 벌었던 기업인들도 석탄산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거나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린 지 오래다. “결국 석탄산업에서 공적인 기능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정부가 자원안보와 서민생활의 안정을 위한 석탄산업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사양산업 취급하면 21세기에 연탄대란을 맞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됩니다.” 고유가로 연탄수요가 급증한 데 비해 국내 무연탄 생산은 감소하면서 일각에서는 연탄대란을 우려하기도 했다. 김 사장은 이와 관련, “화훼농가 등 비닐하우스에서 석유 대신 연탄을 많이 쓰고 서민들도 연탄보일러 사용을 확대해 연탄수요가 많이 늘었다”면서 “하지만 정부의 비축탄 재고가 연간 민간 소비량의 5배가 넘는 710만톤에 달해 당분간 석탄수급에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30년의 인연 속에 ‘첫 내부 출신 사장’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지만 정부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석탄공사’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김 사장은 “석탄공사를 ‘만년 적자기업’으로 부르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지적했다. “10월 말 현재 부채가 8,666억원인데 거의 대부분이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라 공사인력을 구조조정하면서 ‘퇴직금 및 위로금’을 지급하는 데 든 비용”이라는 것. 석탄공사는 1만3,000여명에 달했던 임직원 수를 2,300여명으로 줄여 89년 이후 총 퇴직자만 1만8,165명, 퇴직금 지급액은 6,902억원에 달했다. “왜 잘나갈 때 퇴직충당금을 쌓아놓지 않았느냐”고 묻자 김 사장은 “60ㆍ70년대 연탄은 ‘국민 연료’였다”며 “충당금을 쌓으면 자연 연탄 값이 오르니 정부가 이를 억제했다”고 말했다. 국민생활 안정과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와중에도 석탄공사의 내부 종양은 커져간 셈이다. 김 사장은 “경영정상화를 위해서는 부채감면이 필수적”이라며 “정부가 소유 중인 비축탄과 석탄공사 사옥 부지를 현물보조 형식으로 석탄공사에 넘겨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이어 “자체 부실로 초래하지 않은 부채만 털어준다면 3년 내에 흑자전환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실제 김 사장 취임 후 석탄공사는 지난해 결손을 566억원 줄였으며 올 해도 적자규모가 80억원 가량 줄어든 538억원에 그칠 전망이다. 석탄공사 적자의 80% 가량은 부채의 이자비용이다. 김 사장은 “경영혁신으로 만년 꼴찌였던 정부의 투자기관 경영평가에서도 지난해 3계단 뛰었다”며 “임직원 인센티브도 이에 따라 100% 가량 올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내부에 충만하다”고 전했다. ‘영원한 석탄맨’으로 남고 싶은 김 사장은 “재임 중 경영개선과 사업다각화의 하나로 해외자원개발 사업에서 꼭 성과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력과 노하우를 앞세워 투자자를 모아 컨소시엄을 형성, 진정한 자원개발사업의 모델을 보여주겠다”며 “내년 안에 중국ㆍ인도네시아 등에서 유망 자원개발사업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경영철학과 스타일] 내부의견 존중 '함께하는 리더십' 김지엽 석탄공사 사장에 대해 임직원들은 "'함께하는 리더십'이 탁월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석탄공사 창립 이래 첫 내부 출신 사장이어서 직원들은 자부심과 기대도 컸지만 걱정도 많았다고 한다. 30년을 석공에 재직하며 내부사정이나 석탄산업에 대해 김 사장만큼 정통한 사람이 없으니 '독주'에 대한 우려가 적잖이 불거졌다. 그러나 김 사장은 취임 2~3달 만에 이 같은 걱정을 말끔히 씻어냈다. 기획팀의 한 직원은 김 사장이 경영의 키를 쥔 후 경영정상화를 위한 중장기 경영혁신 계획을 수립하던 당시를 회고하며 "예상외로 (김 사장이) 내부의견을 끝까지 모두 들어준 뒤 혁신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충분한 의견수렴과 부서간 협의로 새벽 2~3시까지 일을 한 적도 많았지만 '일 못하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제가 회사경영이나 석탄산업에 대해 아는 게 좀 있지만 직원들과 대화하면서 '세대가 다르니 생각의 차이가 있구나' 하는 걸 분명히 알았다"면서 "함께 고민을 공유하고 해법을 찾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혁신안도 나올 수 없고 이를 행동에 옮길 수도 없음을 절실히 느꼈다"고 설명했다. 김 사장의 '귀신 같은 기억력'에 대해서는 직원들의 불만(?)이 적지않다. "보고서에 정확한 숫자가 없으면 그 자리에서 확인을 하는데 머뭇거리면 곧장 사장께서 '얼마니까 확인해봐' 하신다. 때ㆍ장소까지 맞추니 실무자로서는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고 한 팀장급 간부가 말했다. 김 사장은 "구매과장ㆍ예산과장ㆍ경리부장 등을 거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숫자들이 머리에 남아 있는데 안 그러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나올 때가 많다"면서 "챙겨두면 도움이 되는 것들"이라며 웃었다. ◇약력 ▦39년 10월 울산생 ▦58년 부산상고 졸업 ▦64년 연세대 상경대 졸업 ▦64년 석탄공사 입사 ▦89년 석탄공사 기획조정실장 ▦93년 석탄공사 기획본부장 ▦95년 홍중물산 부사장 ▦2004년 석탄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