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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 회장과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실형이 확정된 27일. 점심시간을 맞아 서울 종로의 SK 서린 사옥을 드나드는 SK그룹 임직원들의 표정은 여느 때와 달리 굳어 있었다. SK그룹은 판결 직후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었지만 최악의 위기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나갈지 방향조차 잡지 못했다. 총수 부재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은 SK는 국내외 각종 대규모 투자, 신사업 추진, 해외 주요 협력 논의 등 그룹의 주요 경영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재계 역시 큰 충격에 빠지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27일 대법원 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이날 펀드 출자금 선지급금 명목으로 465억원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로 기소된 최 회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또 최 회장과 함께 기소된 동생 최 부회장에게 징역 3년6월을 선고한 원심도 확정했다. 대법원은 최 회장 등이 횡령에 가담했는지 여부와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을 증인으로 신문하지 않는 것이 위법한지 여부 등에 대해 원심과 같이 최 회장 등이 횡령에 가담했고 김 전 고문을 신문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먼저 최 회장 등이 횡령에 가담했는지에 대해 재판부는 "펀드출자가 갑작스럽게 결정되고 펀드가 결성되기도 전에 이례적으로 선지급된 점, 김 전 고문에게 송금할 투자위탁금이 아니라면 최 회장 등이 펀드출자와 선지급을 허락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점, 김 전 고문에게 송금된 돈을 나중에 최 회장 등이 대출을 받아 메꾼 점, 김준홍(48)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최 회장 등과 이 사건 범행을 공모했다는 취지로 원심법정에서 진술하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공모사실을 인정한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김 전 고문을 증인으로 신문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다는 최 회장 측의 주장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판결이 내려지자 당사자인 SK그룹과 재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SK그룹은 공식 입장 자료를 통해 "오늘 대법원 상고심 선고와 관련, 먼저 SK를 사랑하는 고객과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 드리며 그동안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소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대해 참담하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회장 형제의 경영 공백 장기화가 본인들이 직접 진두지휘했던 대규모 신규 사업과 글로벌 사업에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고 덧붙였다.
SK그룹 내부에서는 당장 경영 차질이 불가피한 만큼 막막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룹 관계자는 "참담하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신규 사업 및 글로벌 사업 등은 회장 형제가 진두지휘했던 만큼 경영 공백의 장기화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회장 공백을 모두 메우기는 역부족이라는 분위기가 내부 최고경영자(CEO)에게서부터 나오고 있다. 일단 최 회장이 지금까지 SK하이닉스 인수를 비롯해 그룹의 신사업을 구상하고 주도한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신사업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SK는 지난해 STX에너지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가 9월 항소심 선고가 나온 뒤 인수전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ADT캡스 역시 중도에 인수를 포기했다.
SK의 신수종사업인 반도체 분야 경쟁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반도체는 적시에 거액의 투자를 집행해야 하는데 이를 결정할 수 있는 결정권자가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 회장이 앞서서 진출을 추진했던 터키 및 싱가포르·태국 등지의 각종 사업도 흐지부지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이날 회의에서 CEO들은 최 회장이 주도했던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기업 정착 노력, 글로벌 국격 제고 활동 등이 이번 선고로 중단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같이 했다"면서 "모든 CEO들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어려운 경제환경을 극복하고 고객과 이해관계자들의 행복에 기여하는 SK가 돼야 한다'는 최 회장의 경영철학에 따라 단합해 위기를 극복하고 더욱더 신뢰받는 기업이 되도록 만전의 노력을 다해 나가자고 다짐했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 형제의 실형 확정에 재계 역시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여러 기업 회장들이 기존 판결보다 형이 낮아져 경제살리기가 주안이 되는 것으로 보였는데 이번 판결로 다시 경제 우선 기류가 뒤집어지는 것 같아 당혹스럽다"며 "SK는 당분간 경영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재계가 경제살리기에 매진할 수 있도록 모처럼 훈풍이 불었는데 SK 사안으로 삭풍으로 변했다"면서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