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노동운동의 틀 바꾸자] <3> 비정규직 양산 노조도 책임

'정규직 이기주의' 가 갈등 부채질<br>노조, 고용보장 대가로 비정규직 채용 용인<br>식당·샤워실등 따로 쓰고 노조가입도 거부<br>비정규직 "말로만 차별철폐 요구" 불신 심화


“존경하는 현대자동차노동조합 위원장님께, 현재 저는 5공장에 근무하는 조합원입니다……저의 옆 라인에서는 직영(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하청업체 직원을 부하직원 부리듯 합니다. 자기는 늦게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고 쉬는 시간도 자기가 더 쉬고……저도 직영이지만 너무합니다. ‘비정규직 차별철폐’라는 구호만 외치지 말고 실천하는 조직이 되었으면 합니다.”(현대자동차 노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ID 김박사) 이 글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가 지난 1월18일부터 꼬박 네달째 장기파업을 벌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작업현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여전함을 보여준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급증과 이들에 대한 처우개선이 노동계의 가장 큰 이슈로 부상했지만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진 주요 원인으로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를 빼놓을 수 없다. 경영계와 학계는 물론 노동계 지도자들도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진 배경으로 정규직만으로 구성된 노조의 집단이기주의를 빼놓지 않는다. 정규직들이 자신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비정규직 사용을 묵인하고 힘들고 어려운 공정은 비정규직에게 전담하는 모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 자신들의 진정에 따라 노동부가 130여개 협력업체 9,000여명의 하청업체 근로자를 불법파견으로 판정하자 이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노조 집행부는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며 회사가 제시한 라인재배치를 통한 불법파견 해소책을 거부했다. 현대차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이 회사의 비정규직 근로자 증가는 오래 전부터 노조가 양해한 사안이었다. 현대차 노조는 2000년 6월12일 사인한 ‘완전고용보장합의서’를 통해 불가피하게 인력충원이 필요한 공정 등에 비정규직을 추가 투입, 생산직의 16.9% 이내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동의했다. 실제로 이 회사 비정규직들은 현대차 노조 대의원들이 회의와 노조활동 등을 핑계로 자리를 비울 경우 그 업무를 대신해왔다. 현대차 비정규직들은 이런 대의원들을 ‘놀고 먹는 빨간 조끼’라고 비난하고 있다. 정규직의 고용안정을 목적으로 노조가 비정규직의 현장투입을 묵인해오다 지난해부터 이 문제가 이슈화 되자 뒤늦게 회사의 발목을 잡으면서 노사관계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민주노총에서 제명당한 현대중공업노조도 이런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대중공업노조는 지난해 2월 하도급업체 비정규직 박일수씨가 ‘차별철폐’를 외치며 분신자살했지만 정규직 노조간부들은 영안실에서 하청노조 간부들에게 폭언을 하고 비상대책위의 농성 천막을 훼손하기까지 했다. 박씨는 유서에서 “복지시설 중 하도급(비정규직)이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식당, 샤워실, 화장실, 커피 자판기뿐이다. 정규직 노조의 단체협약에는 100가지도 넘는 항목이 있다”며 뼈아픈 현실을 폭로했다. 그러나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뿌리 깊은 갈등은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욱 골이 깊어졌다. 두 회사 외에도 많은 정규직 노조들이 비정규직의 노조가입을 거부하며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겨왔다. 기업들은 정규직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비정규직과 하도급업체의 처우개선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하도급 거래관계 구축과 함께 정규직 노조 스스로 인력운용 유연성을 높이는데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원장은 “노동계가 비정규직 보호를 요구하는데 그치지 말고 대기업 정규직 노조 스스로 임금안정화, 배치전환 등 사내 인력운용의 유연성을 높이는데 협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동운동의 최고 지도자인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도 이런 지적에 공감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다. 이 위원장은 “정규직의 집단 이기주의가 노동운동의 위기를 불러왔다”면서 “자기 조합원 중심의 노동운동의 결과, 집단이기주의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고 시인했다. 전문가들은 노동계가 요구하는 비정규직의 완전정규직화는 기업현실과 노동시장 측면에서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조준모 숭실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규직의 고임금 및 고용안정 요구는 비정규직의 저임금ㆍ고불안정성으로 이어진다”며 “합리적 임금→생산성제고→근로조건 격차 완화가 맞물리는 사회통합적 노동운동을 펼쳐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정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비정규직 보호와 고용유연성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비정규직 고용유지를 우선하면서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실용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정상범차장(팀장)·이진우·한동수·김호정·민병권·김상용기자 ss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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