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직업교육 성공하려면

서승직 인하대 건축학부 교수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이 다보스포럼 참석을 위해 스위스를 국빈방문하던 중 베른 상공업직업학교를 방문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런 박 대통령의 행보는 스펙보다 능력중심의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의지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고교졸업생 10명 중 7명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대학만능주의로 야기된 '대학졸업장=실업증'이라는 현실의 난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능력중심 사회의 실현은 사실상 기대할 수 없다.

대학만능주의 실업자 양산 부작용

스위스는 직업교육의 강점과 대물림되는 숙련기술 노하우로 제조업의 든든한 기반을 다진 모델 국가로 작지만 강한 기술부국이다. 또한 국제기능올림픽에서는 항상 한국과 우승을 겨뤄온 전통적인 기능강국이다.


기능올림픽대회의 성적으로만 보면 한국은 스위스보다 분명 우위에 있는 기능강국이다. 하지만 스위스는 고교졸업자 10명 중 2~3명 정도만 대학에 진학하고 능력을 존중하는 명실상부한 기능선진국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은 기능선진국의 반열에 들지 못한 기능강국일 뿐이며 세계 최고의 기능강국 역량이 제조업의 경쟁력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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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가 기능선진국이 된 것은 직업교육의 보편적 이상을 실현할 시스템을 잘 갖췄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능올림픽도 직업교육의 강한 본질에서 현상으로 표출된다. 한국은 직업교육의 본질을 간과한 현상만 추구한 정책으로 기능선진국이 되지 못한 것이다. 한국의 직업교육이 강점을 발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학벌만능의 만연된 교육정서에 있다. 동유럽의 스포츠강국이 스포츠선진국이 되지 못하고 올림픽 무대에서 사라진 이유도 한번쯤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스위스의 선(先)취업 후(後)교육의 직업교육 시스템은 능력중심 사회의 기반을 다진 초석이며 일거다득(一擧多得)의 강점을 창출하는 산실로 평가되고 있다. 스위스의 직업교육이 강한 것은 좋은 직업교육 시스템 때문이라기보다 직업교육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게 한 사회정서에서 비롯됐다.

기술의 가치존중과 숙련기술인 육성 비전 등의 로드맵이 구축돼 기능인에게 희망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위스 직업교육의 강점이 '직업교육―대우(능력의 가치존중)―전문가 육성 비전'을 하나로 하는 직업교육 육성을 위한 3위일체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우와 전문가 육성 비전'은 스위스 직업교육의 강점을 만드는 동력이다.

실질적 기능인 우대정책 마련을

청와대는 스위스의 직업교육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기술인력 육성에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스위스의 직업교육 시스템을 활용한다고 똑같은 강점이 창출될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좋은 재목은 좋은 묘목을 심는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다. 좋은 토양과 풍토의 조성은 어린 묘목을 좋은 나무로 가꾸고 재목을 얻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우리는 직업교육의 문제가 야기될 때마다 본질을 살리기보다 보여주기식의 제도와 간판 바꾸기 등의 현상만을 추구해 대학만능주의를 심화시켰을 뿐이다. 기능인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암울한 실상은 외면하고 실효성도 없이 외치는 기능인 우대정책으로는 직업교육을 살릴 수 없다. 단언컨대 한국의 직업교육을 살리는 길은 선진 직업교육 시스템 도입보다 세계 최고의 기능강국에서 직업교육이 뿌리내리지 못한 원인에서 대책을 찾는 것이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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