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소비자 불만에는 눈도 꿈쩍하지 않기로 유명한 애플이 지난 2013년 중국에서 자존심을 구겼다. 미성년자 노동력 착취 논란에 제품 애프터서비스(AS) 문제를 둘러싼 중국 소비자들의 잇따른 불만으로 최고경영자(CEO)인 팀 쿡까지 직접 사과했던 것. 애플의 사과까지 이끌어낼 만큼 소비자 불만을 촉발시킨 것은 바로 중국 국영방송인 CCTV가 그해 3월15일에 내보낸 소비자고발 프로그램 '315완후이(晩會)'였다.
중국에서 3월15일은 '소비자의 날'이다. 특히 이날 오후8시는 중국 소비자들에게 '복수의 시간'이다. 2시간 동안 CCTV 2번(차이징) 채널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315완후이'를 통해 그동안 쌓였던 소비자들의 불만이 폭발하기 때문이다. 반면 타깃이 된 해당 기업에는 이 시간이 악몽이다. 특히 중국에 진출한 다국적기업에 '315 완후이'는 저승사자 같은 존재다.
이미 애플 외에 독일 폭스바겐과 일본 니콘도 곤욕을 치렀다. 이 방송을 통해 번져나간 소비자 불만으로 폭스바겐은 기어변속기 문제로 38만대를 리콜했으며 지난해에는 니콘 역시 뭇매를 맞고 자발적 리콜을 실시했다.
올해 '315완후이'는 예년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외국계 기업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궈전시 전 CCTV 경제채널 총감독이 부패혐의로 체포되는 등 CCTV도 부패척결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 더욱 공격적인 고발 내용을 담을 가능성이 있는데다 올해가 '315완후이' 25주년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일인데다 일요일이어서 시청률이 높을 것이라는 관측도 기업들에는 악재다. 이미 일부 기업들은 지난해 12월부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대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 타깃은 어디일까. 최근 CCTV '315완후이' 제작진은 법제만보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완후이 대상은 큰 호랑이(리딩 기업)가 될 것"이라고 암시했다. 올해도 한 건 제대로 터뜨리겠다는 선전포고인 셈이다.
인터뷰에서 제작진은 올해 '315 완후이'의 주제를 '양지(陽地)에서 소비'로 정하고 웨이신·웨이보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료를 수집한 뒤 네티즌과 상호 교류하며 문제점을 짚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315완후이'의 대상은 방송 당일까지 철저한 비공개가 원칙이지만 지금까지의 자료수집 결과에 따르면 인터넷 관련 기업이 집중 포격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제만보는 "P2P인터넷대출, 인터넷사기, 휴대폰 4G 요금 등이 이번 완후이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P2P대출(Peer-to-Peer Lending)은 은행 등 금융중개 기관을 거치지 않고 개인과 개인이 온라인플랫폼을 통해 대출을 연결해주는 비즈니스를 말한다.
올해도 역시 외국계 기업이 주요 타깃이 될 것이냐는 질문에 시야둥 '315완후이' 총감독은 "완후이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다국적기업을 겨냥해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리딩 기업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이라며 "반부패 척결과 같이 호랑이를 때려잡으면 작은 파리는 두려워 피하게 된다는 논리"라고 답했다.
한편 '315완후이'를 앞두고 중국소비자협회가 유명 브랜드 세탁기의 세탁력을 비교 분석한 자료를 공개해 관련기업들을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자료에서는 일본의 산요ㆍ파나소닉,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 중국의 샤오톈어ㆍ하이얼, 한국의 삼성세탁기 등의 세탁력이 별 5개 만점에 3개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