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화해와 포용

1980년 5월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절로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세칭 동교동 사람들이 굴비처럼 엮여 줄줄이 감옥행일 때다. 5월17일 밤 김대중 대통령에서부터 말단 비서에 이르기까지 모두 중앙정보부로 연행됐다. 지하 2층에 한사람씩 독방에 갇혔다. 내 옆방에는 김옥두 의원이 있었다.그곳에서 7월11일 서울구치소로 옮겨질 때까지 55일간을 갇혀 있었다. 어느날 부터인가 김옥두 의원이 얻어맞기 시작했다. 하루도 안빠지고 매질이 계속됐다. 80년 세칭 「서울의 봄」때 동교동 김대중 대통령댁을 다녀간 사람들의 방명록을 놓고 김옥두 의원에게 확인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의원인들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일일이 확인할 수 있겠는가. 물론 김의원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고성과 함께 매질이 시작됐다. 이 일이 거의 매일 반복됐다. 처음 몇일간은 김옥두 의원이 얻어맞을 때마다 이놈들이 또 김의원을 때리는구나 하면서 두주먹을 불끈 쥐곤 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허허 저사람 또 얻어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맞을 때마다 웃어버렸다. 그때 나는 정말 야릇한 경험을 했던 것이다. 지금부터 20여년전의 일이다. 그때 생각같았으면 우리가 나라일을 맡고 있는 지금 그 사람들을 그대로 둘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을 잊고 모두를 용서했다. 그랬다고 해서 타협을 한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을 용서할 여유가 있는 것이다. 나라의 책임을 맡은 여당의 입장에서는 국민화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힘이 있다고 해서 과거의 가해자들을 학대한다면 국민들은 우리더러 보복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을 용서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원칙이나 정체성을 잃은 것은 아니다. 내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을 도와주는 것이 전직 대통령의 할 일이라고 말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고 해서 정체성까지 의심스럽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처벌하자고 주장한다면 그들은 우리더러 보복한다고 말할 것 아닌가. 개인의 주장이나 원칙도 중요하지만 국가경영에는 더 넓은 화해와 포용이 요청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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