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당초 내년에 신고리 3ㆍ4호기 등 1,000만kW가량의 발전소가 완공될 것을 고려해 전력부하관리 예산을 올해보다 80% 이상 줄였지만 원전 준공 지연으로 내년 여름에도 전력대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1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력난시 비상조치를 위한 부하관리 예산은 올해 2,500억원에서 내년 395억원으로 84%나 삭감됐다. 정부가 내년 여름부터 전력수급 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보고 대기업 특혜 논란 등을 빚던 부하관리 예산을 대폭 줄인 탓이다.
하지만 전력수급의 핵심인 신고리 3호기가 내년 여름 전까지 준공되지 못할 것이 확실시 되면서 정부의 전력예산 운용이 큰 어려움을 겪게 됐다. 신고리 3호기를 제외하고 내년 준공 예정인 대부분의 발전소들은 준공 시점이 하반기로 잡혀 있다. 결국 신고리 3호기 준공 지연으로 내년 여름에도 수급여건이 불안할 경우 부하관리 예산을 써서라도 전력난을 막을 수밖에 없게 되는데 예산 삭감으로 실탄이 없어진 상황이다.
이에 따라 내년에도 정부가 쥐어짜기식으로 전력부하관리 예산을 국회에 구걸하는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최초 부하관리 예산에 666억원가량을 배정했다가 이른 더위로 전력수요가 예상을 뛰어넘자 5월 1,546억원, 6월 2,546억원으로 예산을 늘렸다. 연말까지 최종적으로 쓴 예산은 4,000억원이 넘는다.
원전 준공 지연으로 한국전력의 전력구입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의 전력시장 모의분석프로그램에 의하면 100만kW급 원전 1기가 정지했을 때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하루 전력구입비 상승분은 42억원이다. 100만kW급 2기가 정지하면 87억원, 3기가 정지하면 135억원이 된다. 한전이 원전 대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등 비싼 발전원에서 전기를 구매해 공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비용량 합계 280만kW인 신고리 3ㆍ4호기가 내년에 발전을 하지 못할 경우 전력구입비 상승분은 하루 126억원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35일간 2회 계획예방정비를 받는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1년간 준공 지연이 될 경우 피해액은 3조7,170억원(126억원×295일)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같은 비용은 결국 전기요금에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 전기요금 개편을 앞둔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정부는 수요관리로 정책 방향을 틀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원전 불량이라는 전력 당국의 귀책사유가 명확할 경우 요금 인상을 하겠다는 정부의 명분이 추진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신고리 원전은 우리가 수출한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의 레퍼런스 플랜트(참조용 발전소)로 2015년까지 준공이 안 되면 UAE에 페널티(위약금)를 물도록 계약된 점도 큰 부담이다. 정부는 신고리 3ㆍ4호기의 준공 시점을 아직까지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지만 길게는 2년 가까이 준공 시점이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UAE에 위약금을 물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