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의 I-월드] 우리는 언제나 손수건을 준비한다눈물은 준비되어 있었다
눈물로부터 제외된 세대로 보이는 네티즌들이여, 그대들도 울어라. 이런 기회가 아니면 눈물 흘릴 기회가 그대들에게 언제 또 오겠는가.
잊어버리고 싶은 역사였다고 컴퓨터의 딜리트 키를 눌러서도 안된다.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50년이 걸려야 겨우 도착하는, 그런 시간 계산이나 공간 계산이 존재하는 역사, 1시간이 50년도 되는 계산법을 기성세대의 수학이라고 지워버리지는 말라. 차라리 『손수건을 준비하십시오. 눈물을 흘릴 때가 되었습니다.』라던 세익스피어를 생각하라.
어떤 면에서 50대 이상의 세대는 핑계가 없어 못우는 세대였다. 심지어 여자들 경우에는 오직 울기 위해 손수건을 서너개씩 준비해 가지고 비극영화(그 당시에는 최루탄 영화라고 했다)를 상영하는 극장으로 몰려갔다. 그렇다. 우리는 언제나 손수건을 준비하는 민족이었다. 눈물은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었다.
일본 산게이신문의 여기자는 『나는 기자니까 냉정하려 했다. 그러나 참을 수가 없었다』며 울었다. 서울에 온 다른 특파원들도 울었다. 그러니까 전세계가 울었다. 서울에 몰려든 전세계 특파원들이 울었으니 그들이 전해준 눈물의 뉴스를 듣고 전세계가 모두 흘린 눈물. 한반도는 참으로 오랜만에 세계 인류를 향하여 감동을 제공했다.
네티즌들이여, 소리내어 울자
개인적인 눈물이 아니라 집단통곡용 눈물이 아직도 우리에겐 많이 남아있다. 그동안 모든 방송프로, 특히 TV프로는 진지성의 결여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한국 방송에 그동안 상실했던 진지성의 회복이라는 명제를 안겨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눈물의 시작일는지도 모른다. 50년을 헤어졌던 남과 북의 남편과 아내가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됩니까?』라고 물었을 때 역사여, 그 질문에 대답할 사람을 지적해다오.
네티즌들이여. 소리내어 울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니면 돌아서서 소매 끝으로 눈물을 닦는 그런 울음이라도 울수 있어야 한다. 인터넷 세대는 너무 영악해서, 너무 모든 것을 돈하고만 연결해서 인간미가 없다는 지적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때론 개인과는 상관 없는, 사회나 국가나 국민의 아픔을 내 것으로 알고 흘리는 눈물의 소유자여야 한다. 그리하여 비정하고 삭막하여 인간소외를 불러온다는 인터넷이라는 접속용 도구에도 눈물처럼 촉촉한 물기가 밸 것이다. 그 물기가 바로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눈물이니까.
잃어버린 50년, 빼앗긴 50년은 인터넷으로도 회복시킬 수 없다. 하느님이나 부처님도 회복시킬 수 없다. 그러나 눈물, 그 눈물만이 해결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눈물은 지금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되어 버렸다.입력시간 2000/08/1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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