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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사장단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과 관련해 이례적으로 그룹 차원에서 자성(自省)의 목소리를 내놓은 것에 대해 재계에서는 "삼성이 느끼는 강한 긴장감이 반영된 대목"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른바 '관리의 삼성'이라는 무언의 믿음이 곳곳에서 균열을 나타내고 있어 전면적인 기강 다잡기가 필요하다는 게 삼성 안팎의 의견이다.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는 게 먼저이고 이후에 이런 사고가 발생한 이유가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살펴볼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그룹 대대적인 혁신 계기=삼성 사장단은 17일 회의에서 "병원의 위기 대응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동안 삼성의 역사에서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많았지만 이번처럼 초기 대응에 실패한 사태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8년 전인 지난 2007년 발생한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당시 삼성중공업은 사고 이튿날인 12월8일 부사장 2명을 단장으로 하는 '사고대책본부'를 구성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겼다. 이 사고대책본부는 민관과 적극적으로 협동해 방제작업을 진두지휘하면서 현재 태안 지역 생태계가 다시 살아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서울병원 또한 1번 환자를 최초로 확진한 지난달 20일 대책본부를 구성하며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막상 현장을 장악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게 의료계의 지적이다. 국회에 출석한 과장급 책임자가 "삼성이 아니라 나라가 뚫린 것"이라고 발언하며 국민들의 공분을 키운 일도 있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무산에 이어 헤지펀드 엘리엇의 삼성물산 공격, 삼성서울병원에 방역체계 구멍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고로 인해 '삼성이 하면 다르다'는 신뢰가 점점 약해진다면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단순히 삼성서울병원뿐 아니라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그룹 전 계열사에 대해 총체적인 시스템 점검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차원 지원책 나올 듯=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내놓을 지원책에도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사장단은 이날 "메르스 사태의 빠른 수습을 위해 병원은 물론이고 그룹이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지원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물론 삼성 스스로도 현 단계에서 금전적 보상 얘기를 꺼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국가적 위기인 만큼 이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다만 유무형으로 전체적인 지원의 그림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삼성생명이 세운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운영하는 병원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어 그룹 차원에서 직간접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문제는 지원의 형식이다.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당시 삼성중공업은 개별 피해 보상과 별도로 3,600억원의 지역발전출연기금을 마련해 태안 지역 사회에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경우 파장이 어디까지 확산할지 가늠하기 어려울뿐더러 삼성서울병원 자체로 감당할 현금이 없어 그룹 차원에서 큰 그림을 그릴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구체적인 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사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대로 종합지원대책과 재발 방지책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삼성그룹 전체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당분간 일종의 '자숙'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사장단이 나서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더욱 근신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주문한 만큼 골프나 지나친 음주 등은 전체 임직원이 스스로 자제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그룹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이 같은 지시를 내리지는 않았지만 주요 계열사에서는 예정됐던 회식을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다만 이와 관련해서는 가뜩이나 메르스로 내수 경기가 어려운데 삼성마저 소비 자제령을 내리면 경기 전반에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