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9일] 매카시즘

1950년 2월9일, 미 웨스트버지니아주 여성 공화당원 대회. 연사인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의 발언에 모두가 입을 벌렸다. ‘국무부 내 공산주의자 205명의 명단이 여기 있다.’ 현대판 마녀사냥 ‘빨갱이 소동(Red Scare)’의 시발점이다. 소련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고 중국 대륙이 홍군에게 넘어간 직후 터져 나온 매카시의 폭로는 검거 선풍으로 이어졌다. 광풍의 중심은 매카시가 위원장인 상원의 비미(非美)활동위원회. 정부와 의회, 학계와 문화계를 망라한 색출 작업은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 ‘빨갱이 명단 205명’ 때문에 과학자 로젠버그 부부가 사형당하고 찰리 채플린이 쫓겨났다. 아인슈타인과 월트 디즈니, 트루먼, 아이젠하워 대통령까지 의심받았다. 용공 시비로 옷을 벗은 공직자만 5,300여명에 이른다.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엉덩이를 긁은 사람도 혐의를 받은(험프리 보가트)” 이 시기는 미국 역사상 가장 비이성적 시대로 꼽힌다. 기고만장했던 매카시가 한계에 봉착한 것은 1954년. 군 수뇌부를 좌익으로 몰아세운 게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4월 말부터 36일 동안 방송된 육군에 대한 매카시 청문회를 지켜본 미국민들은 염증을 느꼈다. 같은 해 12월 상원의 매카시에 대한 위원장 자격 박탈 결의로 매카시즘 광풍은 가라앉았다. 매카시즘은 ‘근거 없이 반대편을 매도ㆍ억압하는 행위’의 보통명사가 됐다. 정작 고통을 당한 것은 이 땅이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정권 안위와 부정부패, 인권말살을 감추는 통치수단으로 악용되고 독재정권 밑에서 정경유착과 관치금융, 독과점 심화, 계층ㆍ지역간 불균형 발전이라는 경제 고질병이 뿌리 내렸다. 매카시즘의 망령은 요즘도 출몰한다. 황장엽에서 황우석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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