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발행을 검토하고 있는 4,000억원 규모의 영구채권 발행을 둘러싸고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자본은 늘려주고 부채비율은 떨어뜨리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는 영구채를 발행하려면 은행 보증이 꼭 필요한데 두 정책금융기관이 이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7일 금융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이달 안에 정책공사에 최대 4,000억원 규모의 영구채 발행을 위한 지급 보증을 서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현대상선은 지난달 이사회에서 2,145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한 데 이어 연내 3,000억~4,000억원 규모의 영구채 발행을 통해 재무구조 개선을 꾀하고 있다.
회사 입장에서 영구채는 사실상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부채비율은 떨어뜨리면서 자본을 확충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지난 6월 기준 현대상선의 부채 비율은 850%에 달하지만 유상증자와 영구채 발행으로 5,000억원가량의 자본 확충에 성공할 경우 그 비율은 540%까지 하락한다.
정책공사는 현대상선이 이달 안에 지원 의사를 공식 통보해오면 지급보증을 전향적으로 검토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현대상선이 국내 해운업계의 대표주자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유조선단을 운영하는 등 국가 기간산업 측면에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책공사의 한 관계자는 "현대상선 측이 조만간 지원 요청을 해올 것으로 본다"면서 "영구채 보증이 여신과 같기 때문에 부담이 되지만 정책금융기관으로서 국내 산업 보호가 우선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공사는 현대상선이 현재 보유한 금융회사 지분(현대증권ㆍ국민은행ㆍ신한은행)을 담보로 제공할 경우 단독으로라도 보증에 나설 수 있다는 방침. 현대상선이 보유한 이들 주식은 수천억원에 달해 담보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산은은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정책공사와 함께 현대상선에 가장 많은 여신을 보유한 산은은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최소 2~3곳의 시중은행이 들어와야 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산은 관계자는 "현대상선의 영구채 보증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면서도 "다만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최소 2곳 이상의 시중은행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성립돼야 한다"고 전했다. 영구채 보증 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하락이 불가피한 시중은행들이 지원에 소극적인 상황을 감안하면 사실상 지원에 부정적인 뉘앙스다. 올 8월 산은에 가장 먼저 지원을 요청했던 현대상선이 그 이후 산은 쪽에 추가 지원을 요청하지 않고 정책공사로 선회한 것도 이 같은 이유라는 분석이다.
금융계의 고위 관계자는 "동양 사태 위기가 현대상선 등 재무구조가 나쁜 기업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책금융기관이 나서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면서 "다만 산은 입장에선 정책공사와 통합을 앞두고 있고 다른 대기업에도 여신이 많이 물려 있어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