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생명체의 노화와 죽음을 관장하는 생체회로가 작동하는 과정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처음 밝혀졌다.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남홍길(51ㆍ사진) 교수팀은 19일 “실험용 식물인 애기장대를 이용해 노화와 죽음은 유전자적으로 결정돼 있는 필연적 단계임을 밝혀내고 식물뿐 아니라 인간 등 모든 생물체의 노화와 죽음이 생체회로를 통해 조절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 과학저널 ‘사이언스’ 인터넷판(20일자)에 주목할 만한 논문으로 소개됐다. 남 교수팀은 애기장대 연구를 통해 노화에 관련된 유전자 3개가 상호작용하면서 노화를 조절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이 식물에는 노화ㆍ죽음 과정이 필수적으로 일어나게 하는 견고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이 있음을 증명했다. 실험 결과 ‘ORESARA1(약자 ORE1)’과 ‘EIN2’ ‘miR164’ 등 노화 관련 유전자 3개의 상호작용으로 이뤄지는 생체회로 조절이 노화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식물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EIN2의 활성으로 ORE1 전사체의 양이 증가하면서 그에 따라 노화와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이 유도된다는 설명이다. 이 생체회로는 ORE1 전사체 양으로 노화와 죽음을 조절한다. 어린 식물에서는 ORE1 전사체 양이 적고 miR164가 ORE1을 분해하지만 노화가 진행될수록 EIN2가 miR164의 분해를 막아 ORE1의 양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ORE1의 양이 증가하는 것을 막아도 식물의 노화와 죽음은 계속 진행되며 노화조절 네트워크의 수학적 모델링 결과 노화와 죽음에 이르려면 노화 생체회로가 일정기간 이상 계속 작동해야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남 교수는 “이 연구 성과는 식물이 나이가 들면 노화 및 죽음을 피할 수 없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다는 명확한 증거를 제시했다”며 “식물뿐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다른 생물체의 노화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