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민족주의가 장기적으로 세계 원유시장의 공급 부족을 초래하는 가장 큰 위협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산유국들이 정유시설을 국유화한 후 시설투자를 게을리하는 것이 국제 원유시장의 공급 부족을 초래하고, 장기적으로 국제유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지는 9일 에너지컨설팅 회사인 PFC에너지의 보고서를 인용, 산유국들에 자원 민족주의 경향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국영 석유회사에 힘이 집중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사에서 세계 정유 4대 메이저인 엑손모빌 등 다국적 정유 회사들의 세계 석유자원에 대한 보유비중은 10%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세계 원유매장량은 사우디아라비아(22%), 이란(11%), 이라크(10%), 쿠웨이트(8%), 베네수엘라(7%), 러시아(6%), 멕시코(1%), 기타(35%)의 순이다. PFC에너지는 세계 원유 공급이 주는 가장 큰 이유로 정치적인 요인을 꼽았다. 원유 생산이 많은 남아메리카와 중동에 사회주의 또는 좌파정부가 속속 들어서면서 자원민족주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정유시설을 국유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부 친 서방 산유국에서는 석유 메이저들이 지분 투자를 통해 원유 생산에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이들 좌파국가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원유 생산시설의 국유화가 다국적 정유회사의 신규 투자를 제한하는데다 국영 정유회사의 재투자도 실패해 생산설비 확충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원유 생산을 제한하는 나라는 멕시코, 베네수엘라, 이란, 이라크 등이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지난해 오리노코 등 주요 원유시설에 대한 국영화에 착수하자, 석유 메이저들이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철수하거나 유전 관리권을 넘기며 소수 파트너로 전락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자체적으로 상한선을 설정, 생산시설 확대를 제한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사우디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감산 등을 주도, 세계 원유 생산량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다. PFC는 카자흐스탄ㆍ앙골라ㆍ나이지리아 등이 생산량을 늘리고 있어 당분간은 원유 부족 현상이 나타나지 않겠지만, 이들 국가의 생산량은 결국 한계에 부딪힐 것으로 전망했다. 로빈 웨스트 PFC에너지 회장은 "문제는 세계의 원유 매장량이 고갈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원유 생산능력이 줄고 있다는 것"이라며 "지난 1960~70년대 대두한 자원민족주가 지금 다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 원유시장의 권력이 엑손모빌ㆍBPㆍ셰브론ㆍ로열더치쉘 등 '구(舊) 4강'에서 '신(新) 7자매(seven sisters)'로 이동하고 있는 것도 자원 민족주의 경향과 무관치 않다. '신 7자매' 란 사우디 아람코ㆍ이란 국영석유사(NIOC)ㆍ베네수엘라 PDVSAㆍ중국 석유천연가스집단(CNPC)ㆍ러시아 가즈프롬ㆍ브라질 페트로브라스ㆍ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등 7개 개발도상국가의 국영에너지 기업을 말한다. 이 신문은 지난 3월 '세계 석유업계에 신7자매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세계 석유ㆍ천연가스 생산량의 3분의1을 통제하며 매장량의 3분의 1이상을 가지고 있는 '신 7자매'가 국제원유시장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