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겨울 대야산을 오르기 위해 경북 문경 완장리에 도착한 것은 서울을 떠난 지 4시간 만인 오후1시30분. 카메라를 챙기고 등산화에 아이젠을 부착한 후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미 학천정이 있는 마을부터 산자락은 글자 그대로 적막강산이었다. 여름·가을 대목을 보고 장사하는 여관과 상점들이 찾는 이 없는 겨울산에 들어와 장사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그나마 산길 초입에는 사람 발자국이 산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산행을 시작한 지 30분도 안돼 발자국은 시나브로 없어졌다. 대신 발톱이 두 개뿐인 산짐승의 발자국이 등산로를 따라 찍혀 있기 시작했다. 아마도 백두대간 대야산 자락에 들어와 있는 인간은 나 혼자인 듯했다.
◇대야산의 설경=산행을 시작한 지 30분쯤 지나자 산수가 빼어난 문경에서도 비경으로 꼽히는 용추폭포가 자태를 드러냈다.
추위에 얼고 눈에 덮여 폭포의 자태는 찾을 수 없었지만 소(沼)는 추위에도 얼지 않고 시퍼런 물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야산은 대하산(大河山)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산은 그 이름에 걸맞게 수량이 풍부하다. 하지만 겨울 대야산은 옥수가 흐르던 계곡이 하얀 눈밭으로 변해 어디가 땅이고 어디가 물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대야산 등산로는 초입부터 계곡의 왼쪽과 오른쪽, 두 갈래로 나눠진다. 기자는 계곡 왼편의 북쪽 사면을 택해 올랐다.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남쪽 사면은 햇볕에 눈이 녹아 사진이 안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눈이 녹아 말라 있는 편한 길을 놔두고 발목까지 눈에 빠지는 그늘 길을 걷자니 힘이 두 배로 들었다.
사진을 찍느라 시간을 보지 않고 느릿느릿 오른 탓에 2시간이 지나서야 월영대에 도착했다.
북쪽 사면이 사진촬영에는 유리했지만 계곡 복판에 있는 월영대를 보기에는 위치가 높았다.
계곡을 건너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온통 눈밭인 탓에 어디가 땅이고 어디가 얼음인지 알 수 없었다. 징검다리같이 봉긋하게 솟아오른 눈 덩어리를 밟았다. 두세 걸음까지는 좋았는데 네 번째 걸음에서 내디딘 발 밑의 얼음이 꺼져 내렸다. 잽싸게 뛴다고 뛰었지만 먼저 디딘 왼발이 물에 빠졌다. 월영대를 렌즈에 담고 하늘을 바라보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땅거미에 쫓겨 내딛는 발걸음을 따라 젖은 등산화가 '찔꺽찔꺽' 장단을 맞췄다.
◇문경새재=조선시대 영남 땅끝에서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갈 때 조령을 거치면 14일, 죽령은 15일, 추풍령으로 길을 잡으면 16일이 걸렸다. 길이 짧은 이유도 있었지만 죽령으로 가면 죽죽 미끄러지고 추풍령으로 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데 문경새재(조령)로 가면 경사스런(慶) 소식(聞)을 듣는다는 믿음 때문에 선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새재로 몰렸다.
조령은 전략적 요충이기도 하다. 왜적이 침입했을 때 조령 관문이 떨어지면 충주가 무너지고 한양이 위협을 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문경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요새였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은 천혜의 요새 문경을 버리고 허허벌판 탄금대에서 왜군을 맞아 대패하고 말았다. 새재에는 모두 세 개의 관문이 있는데 2관문은 충주사람 신충헌이 임진왜란 후에 쌓은 것이고 1·3관문은 병자호란이 끝난 다음 축조됐다. 결국 세 관문 모두 국토방위라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한 적이 없는 셈이다. 동행한 이춘자 문화관광해설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으로 문경새재 관문들은 지은 다음 써먹지는 못했다"며 "하지만 문경새재와 관문들은 가보고 싶은 관광지 1위에 뽑혀 관광지로서의 역할은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쨌거나 제1관문인 주흘관은 숙종 34년 우리나라 최초로 공사실명제를 도입해 축조된 문이다. 주흘관에 공사실명제를 도입한 것은 처음 축조한 관문이 쌓은 지 3년 만에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두 번째 공사에서는 성곽을 지은 도석수, 성곽을 지키는 별장, 성곽으로 쌓은 석재를 운반했던 책임자의 이름을 성벽에 새겨 품질을 보증하도록 했고 3년이 지난 후에는 관할 고을 현감이 관리책임을 지도록 했다. 이들의 이름은 지금도 성 외벽에 새겨져 있다.
주흘관을 지나 2관문으로 향하다 보면 오른쪽에 현감의 공을 기리는 공덕비들이 열을 지어 서 있다. 이 해설사는 "공덕비는 민초들이 지방 현령의 눈치를 보기 위해 세운 사례가 많았던 탓에 문화재로는 지정되지 않는다"며 "실제로 수령이 떠난 뒤에는 훼손되는 경우가 많아 이를 방지하기 위해 철로 주조한 공덕비를 세우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새재에서 눈에 띄는 것은 3관문까지 이르는 길은 차량 두 대가 교차할 만큼 넓은 길인데도 시종일관 비포장도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길이 비포장도로로 남게 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 덕분이다. 박 전 대통령은 서거하기 1년 전인 지난 1978년 자신이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문경을 방문해 3관문부터 걸어 내려왔다. 박 전 대통령은 2시간여 동안 이 길을 내려오면서 수행했던 관리들에게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은 포장하지 말고 흙길 그대로 놔두라"고 지시했다. 덕분에 이 길은 발바닥의 맨살로 푹신한 황토 감촉을 느낄 수 있는 생명의 길로 살아남게 됐다.
곡절 끝에 아스팔트 포장을 면한 문경새재길은 2007년 문화재청이 선정한 '아름다운 곳'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고 최근에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곳 1위에 오르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문경종합온천=대야산과 새재 산행 후 피로를 온천에서 풀어보는 것도 좋다. 문경종합온천은 피부를 매끄럽게 해주는 알칼리성 온천수와 칼슘 등 미네랄이 함유돼 있는 중탄산성 온천수가 동시에 용출되는 유일한 온천이다. 실제로 욕실에는 맑고 투명한 물이 담긴 탕과 갈색 물이 담긴 탕이 나란히 있다. 칼슘이 섞인 중탄산수는 지하에서 무색 투명하다가 지상에서 산소를 만나면서 산화돼 갈색으로 바뀐다. 이 온천은 2001년 3월 개장한 이래 하루 1,500명 안팎의 이용객들이 찾고 있다. 지하 900m에서 끌어올리는 온천수는 예로부터 명성이 높아 피부병 환자들이 많이 찾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문경온천의 수질은 일본 벳푸온천보다 나트륨·마그네슘 등이 훨씬 풍부해 신경통, 피로회복, 스트레스 질환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한다.
용출되는 물 온도는 32도지만 목욕에 적합한 온도인 39도짜리 온탕수와 42도짜리 열탕수로 수온을 끌어올린다. 입욕료는 성인 6,000원, 어린이(만13세 이하) 5,000원, 경로우대 3,000원. (054)571-2002
◇석탄박물관=문경석탄박물관은 1999년 5월 개관했다. 박물관은 사무실 붕괴현장과 채탄과정을 그대로 전시해 놓아 눈길을 끌고 있는데 실제 갱도를 활용한 전시관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다. 특히 여름에는 갱도에서 나오는 서늘한 바람으로 피서에 제격이다. 1994년 석탄사업합리화에 따라 폐광되면서 이듬해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탄광은 1938년 일정 때 개발돼 1950년 11월 석탄공사 은성탄광으로 인수됐는데 성수기에는 월 4,000~5,000명의 관광객들이 다녀간다. 아직 채탄 가능한 석탄이 상당량 남아 있다. 이달부터 궤도열차를 타고 영상을 통해 설명을 들으며 10개 구간을 관람할 수 있는 갱도체험관을 새로 오픈한다. 입장료 성인 2,000원, 어린이 800원. (054)571-2475
쫄깃쫄깃한 삼겹살 쌈밥… 고소한 들깨국수도 별미
◇맛집
■옛날 쌈밥
옛날 쌈밥집은 문경 명물 약돌돼지에 열다섯가지 채소를 곁들여 내놓는 쌈밥집이다. 이 집에서 내놓는 삼겹살은 지역 특산인 거정석(패그마이트)을 사료에 섞어 먹인 돼지의 뱃살 부분이다. 이 집 주인 황재용씨는 "거정석을 먹고 자란 돼지들은 기름이 맑고 육질이 쫄깃쫄깃하다"고 말했다. 그런 탓인지 문경 돼지는 전국 돼지 품평회에서도 1등을 차지했다. 게다가 이 집은 돼지고기를 사흘간 숙성시켜 맛이 최고조에 달할 때 내놓는다. 하지만 이 집이 눈길을 끄는 것은 고기와 곁들여 나오는 열다섯가지 채소와 정갈한 밑반찬, 그리고 돌솥밥이다. 돌솥밥은 검은콩·현미 등을 섞어 지은 것인데 삼겹살을 천천히 먹으면서 30분 정도 기다려야 맛을 볼 수 있다. 약돌쌈밥 1인분 1만원으로 가격 대비 만족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고기는 추가 주문을 해야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문경읍 하리 393의7 (054)572-3833
■채가네 들깨국수
채가네 들깨국수는 지역 맛집에서는 흔히 구경할 수 없는 메뉴다. 들깨를 갈아 고운 물에 굵은 면발을 넣은 국수의 맛이 색다르다. 국수를 먹기 전에는 보리밥에 고추장, 삶은 제육이 나오는데 메인요리가 국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애피타이저 치고는 호사스럽다. 보리밥과 들깨국수·수육을 합한 가격이 6,000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문경읍 하리 354의8 (054)571-8881
◇가는길
중부고속도로-호법분기점-영동고속도로-여주분기점-중부내륙고속도로-문경새재IC
◇관광정보안내
문경새재 관광홍보도우미(해설사) (054)550-6414, 새재도립공원 (054)571-0709, 옛길박물관 (054)550-8365, 도자기박물관 (054)550-6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