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수도이전에 대한 논의가 거세졌다. 잇단 외적의 침입과 정치ㆍ경제의 혼란으로 민심이 악화되고 체제위기가 고조되면서 주로 국왕들이 천도를 주장하게 된다. 하지만 귀족 등 대부분의 기득권 세력들은 반대입장이었다. 이런 가운데 지금의 서울 지역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풍수도참설에서나 지리적인 면에서 북한산과 한강유역의 입지가 좋은 점은 부인할 수 없었다. 나라의 중심이고 한강유역이라 물자수송 요지다. 그래서 부수도로 궁궐이 세워지고 사찰 수도 늘며 규모가 커졌다. 중흥사(重興寺)는 수도이전과 고려왕조의 중흥을 위한 계책으로 세워졌다. 중흥사가 창건된 것은 12세기 중엽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사찰로 있다가 고려 말에 다시 주목 받기 시작한다. 기록상으로는 1341년 고승 보우가 중흥사에 머물며 후학들을 지도했다고 한다. 공민왕ㆍ우왕 때 증흥사는 북한산 인근 사찰을 통괄하는 위치로까지 올랐다. 북한산에는 중흥사를 중심으로 중흥산성이 축조되면서 군사기지화한다. 중흥산성은 이후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북한산성으로 재건돼 지금까지 남아 있다. 중흥사는 20세기 초 홍수로 파괴됐다. 사진 위쪽의 건물은 최근 세운 새 중흥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