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위축으로 하반기에 성장률 둔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다음달부터 각종 공공요금과 에너지가격 등의 인상이 잇따를 예정이다.
여기에다 태풍과 장마 등으로 농산물 작황이 나빠질 가능성과 고유가 상황 지속등을 염두에 두면 정부의 올해 물가상승률 목표치인 3%선이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따라서 성장둔화속에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현상이 지속될 경우 서민가계를더욱 압박할 것으로 우려된다.
◆ 곳곳에 물가불안 요인
정부가 상반기에 억제했던 공공요금들이 다음달부터 인상 러시를 이룬다. 우선다음달부터 수도권 버스, 지하철 기본요금이 각각 14%와 25% 오르며, 제주는 시내버스 요금이 21% 인상된다. 전국의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도 각각 평균 12%, 9% 오르고지난 1997년 9월 이후 단 한번도 오르지 않았던 소포요금도 다음달부터 평균 14.5%나 인상된다. 상수도 요금의 경우 경기도 용인시가 이달초 평균 30% 인상한데 이어여타 지자체들도 6.5-30% 인상을 추진중이다.
에너지세 개편 계획에 따라 경유 소비자가격이 ℓ당 878원에서 936원으로, 액화석유가스(LPG) 부탄 가격이 ℓ당 604원에서 676원으로 각각 오르고, 등유와 중유 가격도 소폭 인상된다. 여기에 태풍과 장마의 영향으로 농산물 가격이 들먹인다든가 국제유가가 다시고공행진을 한다든가 하는 의외의 복병이 나타날 경우 정부가 3% 안팎으로 잡고 있는 물가상승률 억제선이 지켜질지 의문이다.
◆ 최대 변수는 국제유가
생산자.소비자 물가지수를 압박하는 최대 요인은 바로 국제유가다. 중국의 경기과열 진정으로 원유를 제외한 1차금속과 곡물 등 원자재 가격이 하향안정세를 보이고 있으나 유가만은 서부텍사스 중질유(WTI) 기준으로 배럴당 40달러선을 약간 밑도는 수준에서 맴돌면서 더 이상 하락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중에 배럴당 36.7달러로 걸프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던 두바이유 역시배럴당 33달러선을 오르내리면서 더이상 떨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중동에서 불안요소가 돌출할 경우 추가 상승할 기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나 한은은 두바이유 기준으로 유가가 배럴당 20달러대 후반 정도로 떨어진다면 내수는 물론 국내물가에 상당한 여유가 생길 것으로 보고 있지만 현재로서는예측불허다. 특히 원유가격은 각 가공단계별로 거의 전부문에 걸쳐 원가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정부와 한은은 유가동향에 온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 물가불안속 성장률 둔화 우려
수출호황속에 1.4.분기 성장률이 5.3%를 나타냈으나 얼어붙은 내수가 2.4분기에도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다 하반기에도 회복세가 불투명할 것이라는 어두운전망이 우세하다. 따라서 5%대의 성장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민간연구소들은 다소회의적인 입장이다.
현대증권은 올 상반기 성장률을 5.4%로 예측했으나 하반기엔 5.0%로 둔화돼 연간 성장률은 5.2%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유관 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은 23일 상반기 성장률이 5.4%에이르지만 하반기에는 당초 예상치 5.0%보다 낮은 4%대 후반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은행은 민간소비와 설비투자가 지난해 2.4분기 이후 올해 1.4분기까지 4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4월에도 내수.투자가 계속 부진한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경기회복이 당초 기대보다 더디게 이뤄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40%선 가까이 급증하고 있는 수출도 올해 하반기부터는 `베이스 효과'로 증가율이 둔화될 것으로 예측되는데다 건설경기가 위축돼 있는 상황에서 내수부진이 하반기에도 계속될 경우 성장률 둔화는 불가피하다는게 중론이다.
◆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은 낮아
내수경기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수요확대 없이 물가가 오르는 것은 유가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수요가 넘치면서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한다면 성장률도 함께 높아져야 하지만 현상황은 반대로 성장률 둔화와 물가상승을 함께 걱정해야하는 형편이다.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의 신민영 연구위원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곤란하지만 안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서 "하반기에도 내수회복이 불투명해 5% 성장이 가능할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공공부문의 물가압박 요인이 커지는 것은 시기적으로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배상근 연구원은 "고유가 요인이 최종제품.서비스 가격에 아직 반영되지 않은 상태여서 물가압박 요인이 잠재돼 있는 상태"라면서 "통계청과 한은이 집계하는 물가지표와 소비자들이 실생활에서 체감하는 물가에 상당한 괴리가있으며 소비심리가 계속 위축될 경우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민간연구소들은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는 한 기존의 3%선 물가상승률 전망치가 하반기에 그대로 유지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물가상승률 예측치의 상향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의 김범식 수석연구원은 "5% 이상으로 물가가 오른다고가정하면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는 내수도 살아나면서 성장률도 오르게 될 것"이라면서 아직까지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할 상황은 아니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의 남양우 물가통계팀장도 "내수부진으로 제조업체들이 유가급등 요인을 최종소비재 가격에 전가하는 것이 쉽지 않아 당분간은 기업들이 물가압박 요인을자체 흡수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소비자물가지수가 가파르게 상승하는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이승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