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63> 교수의 갑질, 대학은 언제까지 묵인할건가


‘인분 교수’. 얼마 전 한 대학 교수가 제자에게 가혹한 수준의 노동을 시키고 폭행을 일삼고 인분까지 먹이는 등 도무지 사람이라 믿기 힘든 행동을 한 것으로 밝혀져 공분을 산 바 있습니다. 해당 교수의 처신은 ‘싸이코패스’라는 느낌이 들게 할 정도로 극단적입니다. 이런 부류의 인간이 최고 지성이라 불리는 대학 교수로 제자들을 양성했다니 한편으론 무섭습니다. 그리고 이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교수의 갑질은 여러 번 사회 문제로 불거진 바 있습니다. ‘인분 교수’처럼 끔찍하고 엽기적인 행동이 아니라면 대다수 사람들은 ‘대학이 원래 다 그런 곳이지’라며 새삼스러워 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많은 교수들이 학위를 빌미로 학생들에게 권력을 행사한다는 부조리한 현실을 대부분이 알고 있지만 마치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모양새가 된 것도 사실입니다. 기자가 직접 들은 몇 가지 케이스가 있습니다.


#A 교수는 서울 시내 사립대학의 공과대학 소속입니다. IT 분야에서 유명한 그는 자신의 대학원생 12명 안팎의 연구실을 ‘회사’처럼 운영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을 동원해 다양한 국책 사업들을 수주하고 그 인건비를 대신 수령하게 합니다. 그리고 40만~60만원 가량의 기본급만 보장해 준 뒤에 나머지 돈들은 모두 출금해서 자신에게 주게끔 지시합니다. A 교수는 국가가 특수목적 사업 개념으로 학생 개개인에게 지급하는 장학금까지 ‘약속된 것 이외의 자금’이라는 명목으로 받아 갔습니다. 한 사람당 한 학기에 600만원 정도니까, 1년이면 1억 4,000만원 가량의 부수입이 생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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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교수는 서울 시내 명문 사립대학의 융합전공 교수입니다. 그 역시도 ‘IT와 디자인, 사람’이라는 주제로 학계에서 상당히 오랜 경력을 쌓은 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B 교수는 항상 원칙과 소신이라는 미명 아래 인건비를 전용하거나 개인적인 용무에 조교를 가담시키는 등의 일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이것만 놓고 보면 참 ‘바른’ 교수지요? 하지만 그는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교수로서의 삶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명해지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있습니다. 본인만의 콘텐츠로 강의와 저술활동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12~13명 남짓한 학생들에게 자신이 집필해야 할 책의 주제를 할당하고 ‘대신 쓰게’ 했습니다. 학생들이 반발하자 B 교수는 ‘나는 너희들이 당연히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너희들에게 남는 것이다’며 당치 않은 분을 쏟아 냈습니다. 결국 B 교수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리고 강의 자료까지 학생들에게 만들게끔 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한 학기 내내 논문과 프로젝트를 위한 조언보다도 강의자료 관련 회의 비중이 더 많았다고 이야기하기까지 했습니다. B 교수의 책과 온갖 강연들은 모두 학생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셈입니다. 기업에서 고견을 듣기 위해 교수를 초빙했는데 교수는 껍데기일 뿐이고 알맹이는 학생들의 것이라면 그 교수를 초청할 필요가 있을까요. 내용을 모르니 매번 강의자료 만들기는 학생들의 몫이 됐습니다. 그게 조교이자 대학원생의 일이라고요? 그렇다면 프롬프터를 읽는 게 교수의 일입니까?

이런 행태들이 강단에 선다는 이유만으로 교수들이 벌이는 ‘갑질’이라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사실 부정한 행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교수의 제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좀처럼 자신의 스승이 저지르는 도덕적 해이를 고발할 힘이 없습니다. 학계 자체가 내부 고발자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학계는 좁습니다. 교수 임용 과정에서 ‘누구의 제자인가’라는 점과 지도교수에게 직접 하는 평판조회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도 발동합니다. 교수와 함께 생활하면서 자신의 가해자에게 감정적 애착이 생겨 버린 겁니다. 지금 당장은 학위과정이라는 난제가 남아 있어서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더 좋은 인연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학생은 배우는 존재고, 교수는 가르치는 사람인데 어째서 대학은 이 본분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막힙니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처럼 스승을 존경하고 모시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발적 동기에 의한 것이지 강압으로, 제도적으로 복종시킬 일은 아닙니다. 대학이 지금처럼 어쩔 수 없다고 나 몰라라 한다면 학생의 외면을 받는 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갑질하는 교수의 월급 상당수는 학생의 주머니에서 나옵니다. 참 아이러니컬한 현실입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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