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비용절감과 효율성 제고’를 하는 게 기업 이익을 늘리고 성장을 가져오는 유일한 길일까. 만약 비용이 많이 드는 산업안전이라는 보편적 가치 하나 만을 추구해 놀랄만한 경영실적을 거뒀다면.
알코아로 알려진 ‘아메리카 알루미늄 회사’는 1987년 폴 오닐 CEO가 취임한 이후 1년만에 역대 최고의 이익을 올렸다. 오닐이 물러난 2000년 알코아의 연간 순이익은 취임전보다 5배나 많았다.
오닐의 취임 일성은 ‘근로자의 안전’이었다. 뉴욕 맨해튼의 한 호텔에서 열린 IR행사에서 그는 “알코아를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투자자들은 아까운 돈을 쓸데없이 안전 분야에 쓰는 이상한 CEO가 왔다며 알코아 주식을 매도하겠다고 수근댔다.
1년뒤 알코아의 산재율은 미국 평균의 20분의 1로 떨어졌고, 이익은 급증했다. 뉴욕타임스 기자 찰스 두히그는 저서 <습관의 힘>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알코아는 가장 쾌적하고 능률적인 회사가 되어야 했다”고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
이와는 달리 파이어스톤은 8시간 3교대를 12시간 2교대로 바꾸고, 신규 노동자의 급여를 30% 삭감한 뒤 불량 타이어생산이 대폭 늘어났다. 결국 파이어스톤은 대규모 리콜을 해야 했다.
보편적인 핵심가치와 눈앞에 보이는 근시안적인 하위 가치를 혼동하는 기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물론 방만한 경영과 비효율, 부정 등은 기업의 독이다. 하지만 단지 비용 절감을 통해 대차대조표상 흑자만 내려고 하다가 본원적인 경쟁력을 훼손하는 우를 범하면 안된다.
LG전자 납품업체였던 쿠쿠전자는 납품경쟁 탓에 10년 동안 매출 300억원대 벽에 갇혀 있었다. 급기야 1997년말 외환위기가 닥치자 한계가 왔다.
2세인 30대 구본학 사장은 하청과 결별하고 독자브랜드의 길을 가기로 결단한다. 그는 과감하게 TV광고를 내보내며 쿠쿠 브랜드를 론칭했다. 쿠쿠전자는 현재 국내 밥솥시장의 70%를 점유하며 매출 4,995억원(지난해 기준)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모든 납품업체들이 독자 브랜드를 내걸고 TV광고를 하면 쿠쿠전자처럼 될까. 축적된 기술력 없이 번지르르한 포장 마케팅만으로는 반짝 인기에 그칠 공산이 크다. 구 사장이 간파했듯 성장 정체 10년 동안 감원없이 연구원과 생산직 근로자 등을 그대로 안고 가며 기술의 칼을 갈았던 게 성공의 진짜 이유다.
알코아와 쿠쿠전자는 어려울수록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전략적 사고의 중요성을 웅변한다. 국가경영도 눈앞의 미봉책이 아니라 최우선 핵심가치를 잘 선택해 견실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초이노믹스의 핵심가치는 성장인듯 하다. 성장과 시장원리, 대기업 중시를 앞세운 과거 정부들의 성적표는 신통치 않다. 오히려 성장둔화와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킨 게 아닌가 하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불평등 완화라는 핵심가치를 위해 부자 증세와 인적투자에 힘쓴 미국 미네소타주 사례는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세금 인상과 시장개입 정책을 편 미네소타주의 실업률은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GDP 성장률은 2.8%를 기록했다.
반면 ‘중서부의 쌍둥이’로 불리는 바로 옆 위스콘신주는 세금감면과 공공 서비스 축소를 하며 작은 정부를 실천했지만 성장률은 1.6%에 머물렀다. 일자리 창출률은 2010년 18위에서 33위로 하락했다.
주경계 도로 양옆으로 마주보고 있는 뉴저지주와 펜실베이나주의 패스트푸드점을 비교한 앨런 크루거 프리스턴대 교수 등의 최저임금 실증연구도 흥미롭다. 이전 통설과 달리 최저임금을 시간당 4.25달러에서 5.05달러로 올린 뉴저지주 패스트푸드점들이 고용을 늘렸다. 이후 긴 검증을 거친 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게 거의 정설이 됐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은 미네소타주가 아니다. 그러나 위스콘신주의 길을 걸어온 것만큼은 분명하다. 미네소타 해법에 대한 한국 사회의 치열한 논쟁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