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한국ㆍ조선ㆍ동아ㆍ중앙일보 등 주요 언론기관과 한나라당의 김문수의원을 상대로 3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앞서 청와대는 지난 11일 4개 언론사를 상대로 7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고 한 언론사 기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앞장서 언론을 상대로 고소를 제기하고 있으니 정부부처도 유사한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 대통령은 이런 소송을 수행하기 위해 별도의 예산과 기구의 필요성을 말한 적도 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정부와 언론간의 소송공화국으로 진입할 계제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도 인간인 이상 감정이 있을 것이다. 과거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고 심지어 죽이기도 했다. 부당하게 손해를 봤다고 생각해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은 과거 정부가 저지른 불법무도한 행위에 비하면 진일보 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헌법적 기능은 국민을 대표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자격이 공인이던 개인이던 그 같은 기본의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노 대통령은 이번 손배소 제기 때 해당 언론사의 편집국 간부들을 상대로 형사고소까지 했다가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은 내란과 외환죄가 아니면 형사소추 되지 않는 헌법상의 특수 신분이다. 그런 신분의 대통령이 일반 국민을 형사고발했다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실수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소송대상의 등가성이나 형평성에 비추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노 대통령의 고소에서 가장 의아스러운 것은 공인의식이다. 공인에게도 보호받을 명예가 있어야 하지만 일반인과는 같은 수 없다는 것은 법으로 확립된 원칙에 속한다. 대통령은 공인 중에서도 공인이다. 노 대통령이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일부 부동산관련 의혹들은 언론으로선 충분히 관심을 가질만한 것들이고, 그리고 그 의혹이 완전히 해소된 상태도 아니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물론 언론이 일부 무책임하게 의혹을 과장한 측면도 있을 수 있다. 그런 보도 관행은 시정되고 응분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보도가 악의에 바탕했다는 증거가 없는 한 언론중재제도를 거쳐 얼마든 해소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그런 절차마저 생략한 채 막바로 고소를 제기한 것은 지나치게 감정적인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모기를 잡으려고 칼을 빼든 격이다.
국정을 풀어야 할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오히려 엉키게 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대통령이 사적인 일에 매달릴수록 공직수행은 지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침체된 경제상황,심각한 남북관계에 비추어 대통령의 행동은 너무 한가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학인기자 leej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