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다는 건 공포이자 안도이기도 하다. 암흑은 본능적인 두려움을 주지만 때론 눈을 감아버리는 게 나을 때도 많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영화'줄리아의 눈'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와 안도를 영리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관객은 암흑 속에 있을 땐 빛을 갈구하다가도 빛이 환히 비추면 눈을 감아버리고 싶어진다. 영화의 시작은 평범한 스릴러와 다르지 않다. 선천적 시력 장애로 실명한 쌍둥이 언니 사라는 자살로 위장된 채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언니처럼 시력을 잃어가는 중인 동생 줄리아는 소식을 듣고 사라의 집을 찾은 뒤 언니가 자살이 아니라 살해된 것이라는 직감이 들고 시력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범인을 찾아 나선다. 영화의 미덕은 범인을 추적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시력을 잃어가는 주인공의 공포를 관객이 공감하게 했다는 데 있다. 초반에 그저 그런 스릴러 영화처럼 보이던 영화가 주인공이 시력을 점점 잃어가는 중반이 지나면서 오히려 긴장감이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독은 초점이 흐려지는 주인공의 시선을 렌즈에 투영해 보여준다. 주인공의 시선으로 영화를 전개한 덕에 범인은 영화 중반에 이르면 누구나 예상 가능하지만 그의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만큼은 소름 끼칠만큼 공포스럽다.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오퍼나지' 등으로 기묘한 세계를 그려낸 스페인의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제작을 맡은 영화다. 그의 이름을 빌려 홍보하고 있지만 사실 영화는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작품이라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는, 철저히 신예 감독의 작품 같다. 주인공들이 스페인어를 쓰지만 기존 할리우드 스릴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업영화의 만듦새를 갖추고 있어 낯설지 않다. 쌍둥이 언니 사라와 주인공 줄리아 1인 2역을 해내며 시력을 서서히 잃어가는 공포를 보여준 주인공 벨렌 루에다의 연기가 탄탄하다. 지난해 스페인에서 개봉해 자국영화 중 흥행 1위를 기록했다. 3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