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루저'가 '위너' 되는 사회

얼마 전 취재차 수도권의 한 전자부품업체를 찾았더니 사장이 두 장의 명함을 내밀어 의아했던 적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한 장에는 대표이사직에 본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다른 한 장에는 엉뚱한 사람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는 한때 수백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알짜기업을 운영해오다 해외법인에 근무하던 임원이 회사돈을 횡령하는 바람에 졸지에 부도를 맞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어렵게 사업체를 새로 꾸렸지만 이런저런 불이익 때문에 고심 끝에 처남을 대표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굳이 그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 경영환경에서는 한번 실패한 기업인이 재기에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행여 부도라도 냈다면 무슨 죄인이라도 되는 양 금융권과 업계에서 철저히 외면받으며 재기를 위한 기회마저 철저히 차단되기 마련이다. 실패 기업인의 재창업을 유도하기 위해 '두 번째 기회를 용납하는 문화법'까지 운영하고 있는 선진국들의 기업환경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가 발벗고 나서 실패 기업인의 부활을 겨냥한 각종 지원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청은 재창업 지원자금을 마련해 기업인들의 패자부활을 지원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업체들의 지원자격과 금리조건을 대폭 손질하는 등 문턱을 낮춰가고 있다. 덕분에 그동안 타인의 명의를 빌려 법인을 설립하거나 고금리의 사금융에 매달려야 했던 실패 기업인들이 당당하게 양지로 걸어 나와 재기를 모색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걸음마 수준에 머무르는 지원제도를 개선하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회 전반의 인식을 바로잡는 등 과제도 많이 남아 있다. 옛말에 벼락을 맞고 살아난 대추나무는 톱이나 도끼로도 쪼갤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해져 최상의 묘목재료로 인정받는다고 했다. 실패 기업인이 쉽게 좌절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도록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오늘의 '루저'라고 해서 내일의 '위너'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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